한국 사회는 지난 50여년간 경제발전에 매진해왔고, 어느 국가보다도 효과적으로 그 목표를 달성했다. 효율적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강력한 정부의 리더십과 국민의 노력이었다. 국민들이 어떠한 이견이나 반론도 제기하지 않고 정부의 사업의도를 충실히 따라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민주시민사회가 성숙함에 따라, 정부사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기존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공익을 위한 정부정책이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이해당사자의 동의가 없는 경우는 큰 난항을 겪거나 좌절하는 사례들이 속출했다. 부안 핵폐기장 유치, 사패산 외곽순환도로건설, 새만금 간척사업 등을 비롯한 일련의 국책사업 실패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결정과정의 문제점을 생생히 보여준다. 정부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면서 국민적 갈등이 불거지고 환경이 파괴되는 등 막대한 사회적 손실이 초래된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추진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해해 국가공동체적 성격이 약화된다는 데에 있다.

 정부는 이달 10일 15개보의 착공으로 ‘4대강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이 사업에 대한 국민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사회합의를 얻지 못하여 좌절됐던 대운하 사업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지속됐다. 그러나 정부는 사업의 근본적 성격은 변경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다가, 비판의 목소리가 줄자 조용히 공사를 시작했다. 다름아닌 국민과 소통 없는 일방적 정부사업추진의 공식을 밟고 있는 것이다. 소통 없는 일방적 정책결정은 필패의 숙명을 안고 있다. 정부는 과거 대규모 정부사업 실패의 역사를 거울삼아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제 개발독재시대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현재를 승부할 수는 없다. 사업의 결정과정상 국민의 뜻을 확인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OECD는 공개적이고 포괄적인 정책형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 정책과정에 있어 단순 정보제공과 시민협의의 단계를 넘어 적극적인 시민참여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 1995년 업무지침으로 협상에 의한 법규와 정책 제정을 강화한 바 있다. 우리의 경우, 이미 2007년 대통령령으로 “공공기관의 갈등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이 규정은 갈등사안이 있을 때 시민참여 등의 기법과 제도를 활용하고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골자이다. 갈등관리기본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법이나 제도만 만들어놓고 이를 효과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요구를 정책과정에 반영하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염원하는 선진사회 달성을 위한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