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와의 소통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옥은 결코 가깝지 않게 느껴진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한옥과 도시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가까운 곳에 한옥들이 들어서있다.

지난 2008년 12월 10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북촌한옥마을에서 ‘서울 한옥선언’을 발표했다. 서울 한옥선언이란 각종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한옥을 지키기 위해 향후 10년간 총 3천700억원을 한옥 보전과 조성에 투입하는 사업이다. 오 시장은 “서울시 곳곳의 한옥 밀집 지역을 가장 서울다운 정취가 있는 주거지로 육성,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서울의 자랑스러운 문화 정체성을 살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사업에는 사대문 안의 3천100채, 밖의 1천400채 등 총 4천500채의 한옥이 포함됐다.

하지만 한옥선언이 발표되기까지 한옥은 끊임없이 위기를 겪었다. 한옥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외부인이 들어와 한옥을 증·개축하고 음식점 등 근린생활시설을 지으려했다. 관리가 어렵고 살기도 불편해 한옥을 보존하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반대해 한옥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다름 아닌 외국인들이었다.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씨는 거주지인 동서문동 한옥마을의 보존을 위해 재개발 지역 지정 취소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또한 재개발 위기에서 한옥을 지키려던 영국인 데이비드 킬번씨는 개발업자에게 떠밀려 넘어져 실명까지 하면서 한옥을 지키는데 앞장섰다. 한옥을 부수려는 한국 정부에 맞서 외국인들이 한옥을 지켜낸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한옥에 관심이 많다. 북촌한옥마을에서 만난 독일인 선캐(22)씨는 “한옥이 예전에 왕이 살았던 궁과 닮아서 인상 깊다”며 “담장 너머에서 정원을 봤을 때 정말 아름답다”고 한옥을 칭찬했다. 북촌에서 서울한옥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는 허준(55)씨는 “대부분의 숙박객이 외국인”이라며 “전통한옥만의 특색이 있어 외국인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예전에 비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북촌 주민 박상신(69)씨는 “통풍이 잘 돼 문만 열면 시원한 공기를 쐴 수 있는 것이 한옥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겨울에 많이 춥지만 단열공사만 하면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직접 지은 한옥에 8년째 살고 있다는 김석형(46)씨는 “관리가 많이 필요하지만 어릴 적 살았던 한옥이 예쁘고 좋아서 살게됐다”며 “현대인들은 아파트처럼 각진 곳에서 살지만 둥근 선이 많은 한옥에 살다보면 각진 마음도 둥글게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한옥은 어머님의 품처럼 부드러운 공간”이라며 “조상들이 살았던 한옥을 잘 보존해 후손에게까지 물려줘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전국의 만 20~69세의 남녀 1천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2%가 한옥에 거주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한옥이 친환경적인 재료와 방법으로 건축되기 때문에 인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경북 청도에 위치한 한옥학교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청도 한옥학교’는 지난 2003년 9월에 개교해, 현재 대목수* 양성과정을 포함해 총 4개의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한옥을 사랑하는 분 누구나’라는 입학자격을 내건 변숙현 교장은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던 중 한국건축 수업이 2~3학점 밖에 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이론과 실기를 겸비할 수 있는 대안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옥학교를 세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변 교장은 “우리 국민들의 주거문화에 가장 좋은 토대가 한옥”이라며 “생활주거문화를 잘 담아낼 수 있는 현대한옥을 보급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수천년 동안 한국 땅에서 자연과 가장 조화를 이룬 집이 한옥이기 때문에 선조들의 지혜가 녹아있고 민족의 미학이 살아있다며 한옥을 예찬했다. 그래서 변 교장은 한옥을 자연과 소통할 수 있고, 인격을 도야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는 ‘건강한 집’이라 칭했다. 

서울시의 노력이 빛을 발해 지난 6일 ‘북촌 가꾸기 사업’은 유네스코로부터 아시아·태평양 문화유산 우수상을 받았다. 서울시는 “무분별한 개발과 무관심 속에서 사라져갈 위기에 처해있던 북촌을 보존·복원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보인 것이 인정돼 이번 상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상을 받을만큼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어낸 것은 박수 칠만하지만 ‘잘 해서’ 주는 상이 아니라 ‘더 잘 하라’고 주는 상이라는 생각으로 한옥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변 교장은 “자연이 대우주이고 사람은 소우주이며 집은 중우주”라고 말하며 집이 중우주인 것은 “인간과 자연을 소통시키는 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우주 중에서도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있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그 집, 바로 우리의 한옥이다. 한옥을 소중히 다루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한옥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전통과 소통하는 것이 아닌 인간과 집이, 나아가 우주와 소통하는 길이 아닐까.

*대목수 : 건축물을 짓는데 능한 장인

유수진 기자 ussu@yonsei.ac.kr
사진 박민석 기자 ddor_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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