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의 영향 속에서 인류학과 문화를 말하다.

“세상에는 우월한 문화도, 열등한 문화도 없다. 다만 살기위해 적응한 다양한 문화가 있을 뿐이다.”

지난 11월 4일, 인류학계의 거장이자 구조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타계했다. 그는 100세의 일기로 타계 할 때까지 『구조인류학』, 『야만적 사고』, 『신화』, 『날것과 요리된 것』, 『슬픈 열대』 등 다양한 저작을 남기며 인류학뿐만 아니라 문학·철학·문학비평·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인류학의 아버지 태어나다

레비스트로스는 1908년 벨기에 브뤼셀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파리 대학의 법학부에 입학한 그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함께 공부했으며, 철학 교원자격 시험에서 응시하자마자 최연소로 합격하게 된다. 그러나 철학 교수로서의 삶에 권태를 느끼게 된다. 그 와중 레비스트로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민족학이었다. 그는 “민족학은 세계의 역사와 나의 역사라는 양극을 결합시켜 인류와 나 사이에 공통되는 근거를 동시에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나에게 지적 만족을 가져다준다”고 술회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지질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의 사상을 꼽는다. 지층을 관찰하던 그는 같은 토양의 표면에 서로 다른 식물이 자라나는 현상을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식물이 자라나는 것은 곧 한 표층에 시대를 달리하는 토양이 함께 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그는 겉모습보다 밑에 놓여있는 진실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유의 원칙을 세우게 된다. 꿈의 ‘현상’보다 무의식이라는 ‘근본’을 강조하는 정신분석학이나 사회 ‘현상’보다 그 내부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마르크스의 사상은 모두 이런 원칙으로 수렴될 수 있다. 즉, 비논리적이고 우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서로 다른 현상들도 근본 원리를 통해 합리적, 분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또한 ‘투철한 루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루소가 주장한 반진화론적 사유법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루소는 “진화는 가치중립적인 것이며 변화의 기제이지 변화의 방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레비스트로스는 원시문화와 서구문화를 동등한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노력 하게 된다.

인간에 선재하는 구조를 찾다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야콥슨을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이 추구하던 사유의 방향이 구조주의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야콥슨은 한 학문분야 안에 벌써 다듬어진 일체의 원리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학문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주의의 뿌리’로 평가받는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소쉬르는 특정 대상은 그 대상과 대상 외부의 관계를 통해서만 파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구조를 모든 인식의 중심에 두는 구조주의에 따르면 객체와 주체는 모두 구조를 통해서만 정체성을 획득하며 구조의 구성요소로서만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에 영향을 받은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이를 인류학에 적용하여 결혼제도, 친족관계, 신화 등의 문제를 분석하는데 그대로 적용한다. 그는 “진정한 실재는 겉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실재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존과 절연하고 객관적 종합을 통해 추상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이 ‘이원대립’이다. 그는 ‘추상화’라는 인식체계를 제시하며 이원대립관계를 통해 대상 간 차별적 개념 요소를 추론하여 구조의 법칙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시공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은 결국 하나의 같은 구조가 변형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모습의 변형 속에 들어있는 체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일함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논하다

레비스트로스는 민족학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진보라는 관념과 문명인의 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른 미개의 사고가 존재한다는 인식을 부정하고 모든 형태의 사회나 사고를 동등한 차원에서 다루고자 노력했다. 흔히 신화적 사고, 주술적 사고로 평가받는 야생의 사고 역시 내적 논리성을 갖고 있으며 문명의 사고와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를 풍미했던 구조주의는 이미 그 힘을 잃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증주의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구조주의는 현실과는 분리된 추상적 관념에 천착함으로써 내재적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즉, 구조주의는 현실을 떠난 관념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거리로 나서지 않는다”는 평은 이와같은 구조주의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인간에 앞서 존재하는 ‘구조’에만 집착한 나머지 주체의 의의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점도 ‘인간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게 한다. 하지만 건국대학교 인류학과 주경복 교수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인본주의 사상을 극복하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사고의 지평을 열었다”며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이 현대의 다양한 학문의 발전에 끼친 영향을 밝혔다. 현상을 넘어서 인간 저변의 진실을 밝히려고 했던 레비스트로스 노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규민 기자 memyself_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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