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임경선 인터뷰

친구 셋이 모이자 자연스레 얘기가 시작된다. 요즘 ‘그 남자’, 어제 ‘그 여자’ 이야기다. 경제가 휘청이고 취업문이 바늘구멍 같아도, 연애는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객관적인 전망이 암울할수록 연애는 성행인지도 모르겠다. 서점의 실용서 코너에는 그가 당신한테 반한 게 아니라느니, 33가지만 지키면 그 여자를 잡는다느니 하는 류의 책들이 넘쳐난다. 잡지의 한 귀퉁이엔 꼭 연애상담, 연애칼럼란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연애는 칼럼의 대상이 아니었다.

국내 최초의… 연애 전문가?

「한겨레」 'esc'에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을 연재하고 있는 칼럼니스트 임경선씨는 그 틈새를 노려 차별화 전략을 꾀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항상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임씨는 지난 2001년 한 패션잡지에 샘플 칼럼을 보낸다. 소재는 연애. 80년대도, 90년대도 아니건만 연애에 대해 대외적으로 발언하는 일은 여전히 “나 좀 놀았어요”로 비쳐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잡지에서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연애 칼럼이 탄생했다.

임씨는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전략적 차원에서 연애칼럼을 시작했다고 했지만, 사실 연애는 정말 그의 전문분야였다. “연애 많이 했지. 결혼할 때까지 사이사이의 짧은 기간 빼고는 늘 연애 중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연애 못하겠다, 하고 싶은데 사람이 없다 이런 말들 사실 잘 이해가 안 돼.” 대학교 1학년 때는 같은 정외과 남학생을 만나다가 헤어지고 얼마 안 가 신방과 남학생을 만나 눈총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매력적인 어른, 멋있는 어른

현재 그가 쓰고 있는 상담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그의 연애칼럼을 눈여겨보던 「일간스포츠」가 연재를 제의했고 임씨는 이번에는 상담칼럼을 쓰겠다고 했다. “「코리아 헤럴드」에서 ‘디어 애비’나 ‘앤 랜더스’를 너무 재밌게 읽었었거든. 얘네가 ‘싸가지’ 없는 미국 아줌마들의 쌍벽인데 이렇게 눈에 쏙쏙 들어오는 글을 한 번 써보자 싶었지.” 임씨의 목표는 ‘매력적인 어른’으로서 상담을 하는 것이었다. “소위 ‘어른’들이 도덕군자인 양 훈시 두는 게 너무 싫은데 우리나라는 이런 고루한 어른들과 치기어린 젊은 애들 사이의 멋있는 어른이 거의 없다는 거야. 그 중간층이 필요하겠다 생각했어.”

이처럼 양쪽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은 임경선 칼럼의 매력이다. 임씨는 칼럼에서 현재의 삶이 너무나 불만족스러워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 소설을 쓰겠다는 20대 여성에게 따끔하게 충고한다. 현실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찾는 여행은 대체로 도피성이며, 소설은 일상에서 탈출할 때가 아니라 바로 그 매일매일의 소소한 일상에서 길어내는 거라고. ‘십년 후의 책 커버 디자인을 상상하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하루에 한 시간씩만이라도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뭔가를 쓰고 있어야만 합니다.’ 각종 책임을 환기시키며 안정된 삶에 안착하기를 강요하지도, 내 꿈은 소중하니까 무조건 떠나라고 부추기지도 않는다. 그의 답은 그 사이 어딘가다.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으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실현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는 식이다.

그 후 임씨는 「조선일보」, 「한겨레」 등 유력 일간지에도 칼럼을 싣게 됐다. 출판, 언론계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패션지에서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아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순탄한 출발과 안정적인 주행을 위한 스펙쌓기, 즉 ‘준비중’ 기간이 과도하게 길어지는 것에 반대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인생이 잘못되지는 않아. 물론 중간에 길을 수정하려면 굉장한 고민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런 순발력, 적응력도 필요한 건데 그 상황을 맞이하는 게 두려워서 안정적인 직업에 안착한 다음 그대로 쭉 살려는 거, 재미없잖아?” 어느 길로 가든 배울 것은 있으니 먼저 ‘준비중’ 팻말을 내리고 무엇이든 시작하라는 충고다.

고통스럽더라도, 타인과 소통한다는 것

나는 편안한 비연애체질로 사느니 불안하고 고통스럽기조차 한 연애체질로 사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고통스러운 것만큼 행복감도 클 것이고, 무엇보다 인생을 더 생생히 사는 것이기 때문에. 연애만큼 벅찬 행복 그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괴로움을 동시에 체감하면서 타인과 정면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이런 즐거움을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임경선, 『연애본능』 중에서

임경선 하면 연애 이야기를 빼놓은 수 없다. 임씨에게 연애의 효용을 물었다. “별로 연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데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다만 아쉽지 않나 정도의 입장인 거지. 연애만큼 타인과 할 수 있는 깊은 소통이 없거든.” 그리고는 요즘 세대로 올수록 연애를 못하겠단 상담이 많다고 덧붙인다. “상대적으로 곱게 자라서 좀 유약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치고 받고 이런 거 없이 조그만 갈등상황에도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달까. 그러니까 연애의 상황에서 관계의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풀어나가는 능력이 취약한 거지.”

하지만 이런 ‘세대론’에 접근하는 임씨의 태도는 사뭇 조심스럽다. 그는 ‘요즘 대학생들은 어떻다’는 식의 거시적 해석은 피하고 싶다고 한다. “상담에 답할 때도 어떤 집단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구호나 일반론 설파는 하지 않으려고 해. 그건 삶의 복잡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단순해법인 동시에 개개인의 힘과 능력을 무시하는 거 거든. 나는 개인들이 좀 더 강하고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나은 글을

연애칼럼이라는 장르를 일으키며 글로 인생을 풀어가기 시작한 지 어느새 9년째에 접어든 ‘중견 칼럼니스트’ 임경선. 그의 다음 계획은 뭘까. “일단은 지금 쓰고 있는 연애소설을 완성하는 것. 그 다음엔 딱딱한 종류의 글도 써보고 싶고, 한 형식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글을 쓰려고 해. 글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지 계속 탐구 중이야.”

임씨는 상담칼럼을 쓸 때 항상 ‘나는 과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일까’ 자문하게 된다고 했다. 글과 사람은 일치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더 나은 글을 위해 자신 역시 더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매력적인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지만 ‘좀 더 나음’을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사진 추유진 기자 babyazaz@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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