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한 공중파 방송에서 ‘곰배령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이는 명문대학 출신의 도시인들이 곰배령 산골짜기로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사는 이야기다. 그들은 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고 산에서의 생활방식을 찾아 이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청자에게 ‘왜 이들은 도시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을까? 그곳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라는 물음을 던진다.

곰배령으로 떠난 그들처럼 사람들은 종종 도시를 떠난 삶을 그린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지금까지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산속 사찰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템플스테이(temple stay)’를 통한다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다.

템플스테이는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수개월까지 참가할 수 있는 사찰체험 프로그램이다. 이미 관광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외국인,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지난 5일, 템플스테이 체험을 위해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월정사를 방문했다. 월정사에 도착하자 절 곳곳에 눈이 쌓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구석에선 김장을 담그고 있었다. 겨울 풍경을 보는 듯 했지만 분위기는 따스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템플스테이 안내 직원 이송희씨를 만나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간단한 사찰예절을 배웠다. “사찰 내에서 스님을 뵈면 합장을 해야 해요.” 월정사 내 암자를 둘러보고 수차례 탑돌이를 했다. 어디선가 종소리와 목탁소리가 울려와 마음을 가라앉혀 줬다.

30여분쯤 암자를 돌았을까? 오대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놓은 약수로 목을 축이고 근처 전나무 숲길로 향했다. 일주문*에서 월정사로 이어지는 길에 가득한 나무와 그 옆을 따라 흐르는 오대천은 자연의 소리와 향기를 마음껏 내뿜었다. 이씨는 “특히 새벽에 걷는 숲길은 더욱 일품”이라며 전나무 숲길을 걷는 일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대산에서 자란 나물들을 곁들여 먹는 저녁공양은 평소 먹던 음식과는 다른 ‘가득 찬’ 맛을 선사했다. 사찰에서 먹는 발우공양은 승려들이 하는 식사를 뜻하는데 밥그릇, 국그릇, 청수그릇, 찬그릇 4개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 절제된 공양은 나름대로의 신선함이 묻어난다.

월정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최숙정씨는 “두 번째 산사체험을 하러 왔는데 올 때마다 엄마를 찾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20대에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저녁을 먹고나면 또 한 차례 산책을 한 뒤 적광전**에 들어가 108배를 시작한다. 불상 앞에서 108배를 하다보면 빠르게만 살려고 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그동안 생각하지 않고 미뤄뒀던 것들을 생각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평소라면 지루한 감정을 숨기기 힘들었을 것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둘러싸인 월정사에서 이 시간은 오히려 짧게 느껴진다.

담당스님이 프랑스로 출장을 갔기에 당분간 차담(茶啖)은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사는 이와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진솔한 대화. 차담은 늘 벽을 치고 스스로 지키며 살아가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가슴을 터놓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 중인 템플스테이는 80여개다. 대부분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연중 언제든지 체험이 가능하지만 방학기간에는 더욱 체계적인 짜임새로 진행돼 더 많은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일주문(一株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 문
**적광전(寂光殿):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으로 이뤄진 월정사의 법당

글, 사진 박신애 기자 do_neo@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