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멀티플렉스에 있다. 푸드 코트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영화를 고른다. 곧 팝콘과 콜라를 들고 상영관으로 들어설 것이다. 그런데, 어라? 총 12개 관에 걸려 있는 영화가 6편뿐이다. 원래 보려고 했던 영화는 교차상영으로 하루 두 번 밖에 틀지 않는 걸 발견했다. 반면 흥행 블록버스터는 상영시간표를 좁은 간격으로 촘촘히 메우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그걸 보기로 한다. 주말이라 붙은 할증까지 9천원을 내고 돌아서는데, 뭔가 찜찜하다. 그 영화는 곧 천만 관객의 고지를 찍는다고 한다….

여느 멀티플렉스에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다. 멀티플렉스는 한 건물 안에 여러 개의 상영관과 식당, 카페, 쇼핑몰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는 복합공간을 가리킨다. 지난 1998년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CGV 강변’이 문을 연 뒤 10년이 흘렀고 이제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 단관 극장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멀티플렉스는 대학생들의 여가생활과 데이트에도 ‘필수요소’가 됐다.

여기서 질문 하나, 영화관과 여관의 공통점은?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둘 다 임대업”이라 답한다. 영화는 그 내용과 관계없이 가격이 똑같다. 설사 실망스러웠다고 해도 표를 환불해주지는 않는다. 요컨대 영화표를 살 때 우리는 그 내용과는 무관한 무언가에 대해 가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영화를 본다는 경제적 행위는 극장의 좌석을 2시간동안 점유할 권리를 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임대업적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날 때가 바로 위와 같은 경우다. 관은 12개인데 걸린 영화는 아무리 봐도 12가지가 안 된다. 어떨 때는 상영관 수의 절반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 여름 1천100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해운대』는 개봉 첫 주 전국 2천200여개 스크린 중 40%에 육박하는 875개 관을 차지했다. 상영관이 10개인 멀티플렉스에 갔을 때 4개 관이 『해운대』를 상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우리는 미리 생각해놓은 보고 싶은 영화가 따로 있었더라도 상대적으로 시간적 접근도가 높은 흥행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 평론가는 소위 ‘천만 영화’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단지 그 작품이 대중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실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영화의 투자자본과 배급자본이 일치하는 한국영화계만의 특수한 구조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3대 투자사 CJ, 쇼박스, 롯데는 각각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라는 배급망 또한 가지고 있다. 즉 『해운대』의 약진에는 독과점에 가까운 스크린 점유가 한몫했고, 이는 CGV가 투자사 CJ의 『해운대』를 아낌없이 걸어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왕의 남자』, 『괴물』 등 천만 영화가 등장했을 때마다 스크린 독식과 다양성 저하 논란이 들끓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천만 영화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천만이라는 수를 만들기 위해 관객의 영화선택권을 저해하는 인위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이 영화 관람 환경을 보다 쾌적하게 만든 건 사실이다. 덕분에 극장이 음침하다거나 불량스럽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그러나 멀티플렉스가 동시에 다양한 영화가 들어설 자리를 좁히고 관객들의 영화선택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김 평론가와 정 평론가는 관객들이 흥행영화만이 아닌 자신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를 소비자로서 요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미 주어진 보기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수동적 선택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다양한 영화들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김 평론가는 “언제나 새로운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확산시킨 주역은 젊은 세대들이었다”고 말한다. 때문에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대학생들이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자신만의 문화적 취향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주말, 익숙한 멀티플렉스행에서 벗어나보는 건 어떨까.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발견의 기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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