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의 역사'을 통해 본 안락사 논쟁

세 달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지인들은 그녀에게서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병원은 이에 반대했고, 법적인 투쟁 끝에 대법원은 산소 호흡기를 뗄 것을 선고했다. 의료진들은 그녀에게서 산소 호흡기를 제거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위의 사례를 보고 지난 5월 존엄사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위의 사례는 지난 1976년 3월 미국 뉴저지주 대법원의 판례로, ‘죽을 권리’의 실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전세계적으로 이뤄졌던 ‘존엄사 또는 안락사 논쟁’에 겨우 첫발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 『안락사의 역사』의 저자 이안 다우비긴은 “안락사가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며 “현재의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 안락사 논쟁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안락사 논쟁은 인본주의와 기독교 가치관의 대립으로 설명될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자살을 운명에 대한 승리라고 생각했다.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경우에는 “적절한 시기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권리”라고 주장하며,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불명예와 고통을 피하는 정당한 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독교가 주도하는 중세시대가 되면서 자살이나 안락사를 허용하는 분위기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기독교인들에게 죽음은 곧 다가올 신과의 거룩한 만남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준비해야 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자살은 신의 권리를 훼손하는 ‘교만한’행위로 간주됐다. 13세기 파리에서 한 남자가 자살하자 지역 교구가 그의 시체를 길바닥에 끌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보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가 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된다. 볼테르와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에게 자살은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의 일부였다. 그들은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인간이라면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도 그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우비긴은 “자살에 관한 계몽주의 시대의 저서들이 ‘죽을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한 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950년대 들어 소생의학이 발전하게 되면서 말기 환자들의 생명 연장이 가능하게 됐다. 이런 발전으로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의술’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5월 대법원 소송에서의 판결도 이러한 논쟁의 연장선이다. 김모 할머니측 변호를 맡았던 백경희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 후에 “1년여간 지속된 재판과정에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성숙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0월에서야 의료계에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이 만들어지는 등 우리나라에서 존엄사 논쟁은 이제 갓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논쟁의 역사’에 들어선 지금, 서둘러 논쟁을 시작하기 보다 존엄사 논쟁의 역사를 아는 것이 먼저다. 존엄사 논쟁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생명’을 주제로 하기에 사실상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찬회 기자 ganapati@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