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가 가진 참된 기능은 사회적 논쟁을 유발하는 것, 수정헌법 제1조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컨닝은 했지만 시험은 합격이다”

지난 해 20돌을 맞이한 헌법재판소는 최근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절차상의 위법성은 인정하면서 결과의 적법성을 인정했던 미디어법안 판결에 관해 가해지는 누리꾼들의 비판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부터 미디어법안 통과까지, 사회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현안들이 줄줄이 헌법 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른 현재 헌법재판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다.『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는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권에 관한 판결에 지침이 되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수록한 책이다. 진정한 법치주의 구현을 위해 노력했던 미국 연방대법원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올해 성년이 된 헌법재판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자.

“표현의 자유에 성역은 없다”

지난 1984년 공화당의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던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한 남성이 성조기를 불태우며 “우리는 미국에게 침을 뱉는다”라고 외쳤다. 그는 자칭 공산주의 혁명가라고 주장하는 그레고리 존슨으로 며칠 후 미국의 상징인 성조기의 신성함 보호를 주요 명목으로 주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성조기는 다원적인 미국 사회를 하나의 국가 공동체로 단결시키는 상징 역할을 하고 있다. 텍사스 주지방법원은 존슨에게 1년의 징역형과 더불어 2천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텍사스 주고등법원은 존슨의 행위를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호되는 ‘상징적 표현’으로 인정해 무죄를 선고한다. 수정헌법 제1조의 핵심은 서로 다른 사상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므로 △정부는 국민들에게 특정 신념을 강요할 수 없고 △국기에 대한 존경심 역시 강요할 수 없으며 △성조기의 상징적 가치를 위협하는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이 초래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 1988년 대선에서 성조기는 중요한 선거쟁점으로 부각됐고, 정치권은 자신의 애국심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텍사스 주고등법원의 판결을 비난했다. 결국 1989년 존슨의 성조기 소각 사건에 대한 법정 심리가 열렸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존슨의 승리였다. 연방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언론의 자유가 가진 참된 기능은 사회적 논쟁을 유발하는 것으로 청중들의 불만을 자극하는 표현을 과감히 허락하는 것이야 말로 수정헌법 제1조의 근본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즉, 성조기가 상징하는 것은 다양한 이념과 의견을 수용하는 미국 사회의 관용이다. 그리고 이는 표현의 자유에 관해 성역은 없다는 것을 명확히한 판결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미국민들은 이 판결에 대해 반감을 품었고  정치권에선 성조기 관련법을 개정하기 위한절차가 진행됐다. 그러나 새로운 법안 역시 위헌 판결을 받았고 현재 이 판결은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굳건히 지켜낸 명판결로 기억되고 있다.

“정부 관리 비판을 처벌하는 것은 위헌”

지난 1960년 존 머레이는 『뉴욕 타임스』의 광고국에 킹목사보호위원회의 모금 광고를 의뢰했다. 당시 흑백차별로 악명 높았던 앨라배마주에서 흑백차별 철폐를 위한 민권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킹목사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곧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뉴욕 타임스』의 광고는 흑백분리 운동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 이에 대해 경찰 업무를 관장하는 몽고메리 시의원 엘비 설리반이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뉴욕타임스는 앨라배마 주법원에서 패소하게 된다. 뉴욕타임스에서 충분히 광고의 내용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무책임한 보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뉴욕 타임스는 연방대법원에 상고하기로 결정한다.

뉴욕타임스의 변호를 담당한 웩슬러 변호사는 “정부를 모함하거나 경멸하려는 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공인들의 자질과 공적인 문제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라는 제임스 매디슨의 말을 인용하며 “정부 관리에 대한 비판을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논리를 폈다. 연방대법원은 뉴욕타임스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특히 보수적 인사로 평가받던 브레넌 대법관은 “공공의 문제에 대한 토론은 무제한 개방돼야 하며 그 도중에 부정확한 발언이 있더라도 언론의 자유가 제 가치를 발휘하려면 이러한 오류에 대한 관용은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이 판결은 권력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언론을 위협하는 행위를 불가하게 만듦으로써 언론의 자유의 핵심적 목표인 활발한 정부 비판 기능을 담보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당선 연설에서 “미국의 강력함은 무기나 경제력이 아니라 자유, 평등, 인권과 같이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에서 나온다”고 역설했다. 오바마가 언급한 미국의 가치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정치권력, 금권력 혹은 배타적 여론에 맞섰던 법관들의 용기 있는 선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에 부정적인 연예인의 퇴출, 신문·방송의 탄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역사가 과연 이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또 그 시대의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김규민 기자 memyself_i@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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