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적 인간 정재승 교수의 KAIST 랩 탐방기

과학자 정재승은 ‘통섭적’ 인간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그의 제1관심사는 언제나 과학이었지만 자기 전공만 파는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제2, 제3 관심사들의 비중 역시 작지 않았다. 1990년대에 나온 영화는 모조리 섭렵했고 이를 바탕으로 책도 출간했다. 그는 분야를 망라한 시대의 키워드들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칼럼을 쓰기도 한다. 이 21세기형 다빈치, 정재승 교수의 랩에서는 어떤 통섭적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을지 직접 카이스트를 찾아가 봤다.

현재 정 교수가 맡고 있는 랩은 두 곳. 그가 속한 단과대인 바이오 및 뇌 공학과의 ‘브레인 다이나믹스(Brain Dynamics) 랩’에서는 신경경제학 연구가 진행 중이다. 신경경제학은 의사결정의 순간 사람의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밝히는 뇌과학과 경제학, 심리학을 결합시킨 새로운 학문이다. 신경경제학자들은 전통 경제학의 가정과는 달리 경제 주체들이 항상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들은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뇌파 등을 동원해 이런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의사결정에 뇌의 작용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뇌과학 자체가 생물학, 의학, 공학이 만난 과학 내의 융합학문인 셈인데, 여기에 심리학, 경제학까지 묶였으니 신경경제학은 그야말로 통섭 중 통섭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연구실인 ‘씨 인터렉션(C. Interaction) 랩’은 문화기술 대학원(Culture Technology, CT 대학원)에 속해 있다. 이름부터 통섭의 기운이 물씬한 이곳에서는 공학, 인문학, 예술 등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이 모여 과학적 방법으로 문화콘텐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씨 인터렉션 랩은 최근 ‘뉴로마케팅’을 적용해 기아자동차의 신차에 붙일 이름을 고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뉴로마케팅은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을 관찰해 정밀하게 소비자 정보를 마케팅에 적용한 것이다. 정 교수와 연구원들은 200여명의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이름들을 제시하고 뇌의 선호도 관련 영역이 가장 활성화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름이 'K7'이다. 브레인 다이나믹스 랩과 공동으로 신경미학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피실험자들에게 난해한 추상화를 보여준 뒤 작가, 가격, 평론가들의 평가 등의 정보를 차례로 제시하고 뇌에서의 변화를 살펴 본 연구사업이었다. 이밖에도 통섭이 아닌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통섭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었다.

 “통섭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씨네21』에 기고한 글에서 정 교수가 자기 연구실의 슬로건이라고 밝힌 문구다. 브레인 다이나믹스 소속의 윤경식 연구원에게 이 슬로건에 대해 묻자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더니 들어본 적은 없지만 “정말 맞는 말 같다”고 한다. 연구 앞에 ‘통섭’을 붙이는 자체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학문 간 장벽이 낮아진 요즈음의 풍토에서, 통섭은 더 이상 구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굳이 구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당연하게 통섭을 실천하고 있었다.

*fMRI : 뇌를 짧은 간격으로 촬영해 생각이나 감정 변화에 따른 뇌 활성 변화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한 기기.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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