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제대로 읽기

인류는 자신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비합리성을 제거하기 위해 미지의 물질세계 중심부로 걸어들어 간다. 구부러지고 틀어진 길을 따라가면서 인류는 인과적 설명들을 이어주는 실타래를 각 통로마다 풀어놓는다. 통로의 가장자리에는 물리학이 있고 점점 깊숙이 들어 갈수록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종교가 나타난다. 그러나 인류는 곧 경험 지식의 미로에는 입구만 있을 뿐 중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다. 결국 인류는 매번 막다른 미로에서 새 지도를 그리게 된다. 다만 인류에게는 횃불과 실타래가 있기 때문에 실들을 연결해 좀 더 넓은 설명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뿐이다.

왠지 주인공과 결말만 수정한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같지 않은가? 그렇다. 위 전설은 바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식으로 해석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전설이다. 미디어 아트,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연계 등 이미 ‘통섭’은 우리 생활에서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윌슨의 『통섭(Consilience)』은 통섭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그렇다면 통섭을 바탕으로 각종 학문, 학문과 예술 간의 연결 고리를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연 통섭이라는 개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학문들의 환원지점, 생물학

통섭은 크게 환원주의적 통섭과 비환원주의적 통섭으로 나뉜다. 그 중 윌슨은 환원주의적 통섭관을 지지한다. 환원이란 세포를 소기관으로 분해하는 것처럼 하나의 현상을 더 작은 단위로 나누는 것을 일컫는다. 과학자들은 환원의 과정을 거친 소단위들을 재구성하는 종합 과정을 거쳐 이를 바탕으로 상위조직이 가지는 규칙까지 설명하려고 한다. 윌슨은 생물학과 타 학문의 관계도 소단위와 상위구조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자인 그는 인간을 구속하는 물리법칙을 통섭의 기반으로 보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예술, 종교 등을 이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학문 간의 연결고리를 실타래에 비유해 “한 학문에서 올바른 실타래를 잡아낸다면 그것으로 다른 학문 분야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윌슨이 발견한 인문학 및 사회과학이 물리 법칙으로 환원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바로 ‘유전자’다. 윌슨은 “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만 이 때 개별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성된 인간 두뇌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문화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는 유전자는 규칙적인 후성규칙을 만들어 낸다. 후성규칙이란 주변 문화와 환경에 더 잘 적응하고 번식하도록 해주는 문화적 규칙들을 말한다. 예컨대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서 뱀은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주요한 원인이 됐던 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생존율을 높여주는 후성규칙이라 할 수 있다. 즉, 윌슨은 복잡한 연쇄로 이뤄진 물질세계가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물리법칙으로 모두 환원되고,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통섭 개념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통섭, 정말 가능할까?

그러나 우리대학교에서 『통섭』을 주제로 주니어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 권영준 교수(이과대·입자물리학)는 “윌슨의 생각은 원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상위구조의 복잡성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학문 간 연계를 통해 천체 생물학과 같이 우리가 새로운 국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윌슨의 꿈이 의미가 있다”며 “통섭적 사고가 학문 간 소통의 문제에 대해 길을 제시하고 인간 지성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통섭』의 1장에는 너무 높이 날려고 하다가 밀랍으로 만들어진 날개가 녹아버린 이카로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윌슨은 이에 대해 “성공하건 실패하건 간에 그 노력은 존경받을 만하고 그 실패가 기억할 만한 것이라면 상관없다”라고 답한다. 생명계와 물리계의 복잡성, 혹은 윌슨이 생각한 것 보다 더 강한 인간의 자유의지. 무엇이 이유가 됐든 모든 학문을 물리법칙으로 환원하여 한 가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꿈은 실현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그에 기반한 학문들 간의 연계는 엄청난 성과를 냄으로써 우리가 속한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아서 에딩턴 경이 말했듯 “태양이 우리 날개의 밀랍을 녹이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김규민 기자 memyself_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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