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수필부터 재치 넘치는 즐거운 수필까지

올해도 어김없이 가슴이 싱숭생숭해지고 옆구리가 시려오는 멜로와 발라드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가을을 타는’ 우리 곁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줄 친구들을 뽑아보자면, 작가의 어릴 적 꿈부터 소소한 일상 속 이야기까지 다양한 매력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수필’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이러한 수필 중에서도 어떤 흥미로운 책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자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던 故 장영희 씨는 저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마리아 슈라이버의 아동도서 『티미는 왜 저러는거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웃에 이사 온 다운증후군 소년 티미를 본 여덟살짜리 소녀 케이트는 티미의 몸짓이나 발음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엄마, 티미는 왜 저러는거야?”라고 묻는다. 케이트의 엄마는 티미가 다른 비장애인들과 전혀 다른 점이 없고 그저 무언가를 배우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라고 케이트에게 가르쳐준다. 그러자 케이트는 티미에게 “같이 놀래?”라고 말을 건네며 다가간다. 이 말은 티미를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으로 존중해서 용기를 준다.

 장 씨는 모든 문학작품의 기본적 주제가 바로 이 “같이 놀래?”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채로 부딪히며 살아갈 때 문학작품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이자 매개가 된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같이 웃고 울면서 인간적 보편성에 공감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씨는 자신의 저서에서 짤막한 이야기와 함께 여러 책들을 선보인다. “그들이 쓰는 위대한 작품들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호기심이 나기 때문에” 재미삼아 작가들의 전기를 읽는다는 장 씨의 말처럼, 책에 실린 그녀의 에피소드 덕에 장 씨가 건네주는 책들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신체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학 진학을 꿈도 꾸기 어려웠던 70년대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해준 은사님이 선물해주신 책을 소개하고, 밤늦게 무의식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으려다가 자신과 너무나도 달리 ‘인간 시간표’ 같은 삶을 살았던 벤자민 프랭클린의 책을 떠올리는 식이다.

 이 책에 실린 그녀의 수필은 쉽고 재미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릴 만큼 수필 장르를 대표하는 문학성도 인정받은 수작이다. 장 씨의 글처럼 문학적으로 인정받은 작가의 수필집으로는 또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이 책에서 제일 아름다운 표현을 고르라면 어떤 문장을 고를 수 있을까? 어떤 페이지를 읽어도 가슴을 일렁이게 만드는 슈낙의 주옥 같은 표현에 젖어 표현 속의 그 풍경을 그려보고 있노라면 고독이나 외로움도 아름다움이 된다.

“봄이 되어 라일락의 덤불 사이로 꽃이 터지는 소리, 친구들이 왁자하게 노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곳 창 앞에는 피아노 시간의 시작을 앞둔 한 소년이 다가서서 눈에 이슬을 한 방울 맺고 있었다.”

 이번에는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가을에 딱 맞는 슈낙의 작품과 다른 분위기를 띠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을 만나보자. 어린 시절 전학을 가서 새 교과서가 없다는 핑계로 짝꿍과 교과서를 나눠보는 것이 꿈이었다는 소소한 이야기부터 일 년이 지구 시간으로 60년인 혹성에서 태어나는 상상까지 그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매력이 있다. 「스니커 스토리」는 그 중 압권이다. 너무 운동화를 좋아한 나머지 ‘스니커’의 기원을 살펴본 하루키는 스니커의 발명가가 제임스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낸다. 제임스가 스니커를 발명하면서 겪었던 고초나 여러 에피소드들이 이어져 ‘아무 생각없이 신었던 운동화도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쯤, 하루키는 이렇게 수필을 끝낸다. “이따금, 어떤 사람이 스니커를 발명했을까, 하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궁리한 끝에 앞에 쓴 것과 같은 허구를 생각해 냈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죄송.” 뒤통수를 치는 하루키의 재치 넘치는 글들은 짧아서, 읽으며 가속도가 붙어 정신없이 읽다보면 가을의 외로움, 고독 이런 감정들은 어느새 잊혀진다.

말이 살찐다는 풍요로운 계절 가을, 미식가가 들려주는 음식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를 읽는 것도 흥미롭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이 바로 그 책. 어린 시절 저자는 러시아인 친구가 건네줘 먹어본 과자 ‘할바’에 한 입에 반하고 수십년이 지날 때까지 그 과자를 찾아다닌다. 그와 비슷한 터키, 우즈베키스탄 등 여러 나라의 과자를 먹어봐도 추억 속 그 맛이 아니자 ‘그 환상적인 맛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었을까’하고 포기하려할 때 쯤, 어떤 책에서 그 과자가 ‘간다랏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추억 속 맛을 찾기 위해 언어를 공부하고 대륙을 넘나드는 여행을 떠나던 저자가 결국 원하던 사실을 알아냈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건 기쁨이 아니라 차라리 감동이다. 이러한 ‘인류학적’ 음식 탐구 뿐만 아니라 단순한 도시의 미식기행으로 가득한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그 음식들을 찾아 일본으로 떠나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10월의 어느 날, 다양한 매력의 수필집과 함께 한다면 쌀쌀한 바람도 더 이상 우리를 외롭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김연 기자 periodistayeon@yonsei.ac.kr
그림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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