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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섹션] 우리 조상들의 하늘이야기, 전통 천문학고인돌의 홈부터, 고분벽화 천상열차분야지도까지
  • 문해인 기자
  • 승인 2009.09.26 15:53
  • 호수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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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

이는 『삼국유사』에 실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천문대인 신라 천문대의 기록으로 지난 5월부터 인기리에 방영중인 MBC 드라마 『선덕여왕』과도 연관이 깊은 내용이다. 즉 드라마 속에서 일식을 예견함으로써 권력을 얻은 미실의 권력을 다시 빼앗기 위해 선덕여왕이 택한 방편이 천문관측기기인 첨성대를 세운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다양한 천문현상을 관측했을 정도로 천문의 역사가 깊은 나라다.

우리나라 천문학의 기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무덤 고인돌에서 찾을 수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에는 대체로 홈이 파여 있는데, 이를 학계에서는 ‘성혈(性穴)’이라 부르며 민간신앙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바로 이 홈이 통계적으로 주로 덮개돌의 남동쪽에 새겨졌다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천문학적 고려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남동쪽은 동북아시아에서 한 해가 시작되는 지점으로서 천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날인 동짓날 해가 뜨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또한 홈들이 새겨진 모양이 북두칠성, 궁수자리 등 별자리를 나타내는 경우도 발견되고 있어 고조선시대의 천문학적 기원으로서의 당위성을 확실시해준다.

삼국시대 우리 조상들의 천문학에 대한 관심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동서남북 벽면에 그려져 있는 사계절 별자리는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별자리에 대한 지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삼국시대의 역사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약 1천 년 동안의 일식, 혜성, 유성 현상과 같은 다양한 천문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고대에 태양은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으므로 일식은 중요한 천문현상으로 간주돼 꾸준히 관측돼 기록됐다. 앞에서 언급한 선덕여왕의 첨성대 건립 기록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시대의 천문기록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성장했다. 특히 고려시대의 유성우 현상 기록은 현재의 유성우 현상과 비교돼 연구에 도움을 줄 정도로 잘 관찰돼 기록돼있다.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전통 천문학의 전성기로, 특히 세종(1418~1450년) 때의 천문학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의 전통을 이어받아 천문현상들을 상세히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역사서에 기록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천문 유물로는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혼천의 등을 들 수 있다. 1395년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의 크기로 별의 밝기를 구별해 표현하는 등 그 발달된 방식으로 일본 최초의 천문도에도 영향을 줬다. 1433년 만들어진 혼천의는 천체위치 측정의 목적 뿐 아니라 당시 천체관측을 덕을 닦는 행위로 삼았던 조선의 학자들의 교육을 목적으로도 사용됐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전통 천문학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됐으나 일제 식민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천문유물들이 파괴되는 등 불행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서양 천문학의 전래로 전통 천문학은 새로운 발전을 하게 돼 현재 우리나라의 천문학은 다시금 세계적인 위치에 올라서게 됐다. 『한국의 전통 과학 천문학』의 저자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박창범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천문 전통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 민족이 하늘과 맺어온 오랜 인연을 돌이켜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하늘과 별에 관한 우리 조상들의 관심과 애정은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문해인 기자 fade_away@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문해인 기자  fade_awa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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