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무개씨는 평소에 소홀했던 반 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반 MT에 참가했다. 하지만 MT는 윤씨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미 반에서 서로 친해진 사람들끼리만 술을 마시면서 친목을 다지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모든 프로그램이 벌칙으로 술 마시기를 포함하고 있어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낄 수조차 없었다. 윤씨는 평소에 어색한 사람들 끼리 친해질 수 있는 MT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술이들어 간다 쭉~! 쭉쭉쭉!

MT하면 ‘술’이 떠오른다는 홍서정(경영계열·09)씨의 말처럼 대학교 MT에서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대부분 대학교의 MT는 마땅한 프로그램 없이 진행된다. 그나마 프로그램이 있어도 오락성 게임 등에 한정되며 이 역시 ‘술을 마시기 위해’ 진행된다. 밤이 되면 이어지는 대화의 시간도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술로 얼큰해진 뒤에야 시작된다. 대안문화를 모색하는 문화기획사 상상공장의 박희정 활동가는 “04학번으로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갔던 모든 MT가 거의 비슷비슷하게 술만 마셨다”며 “(술이 중심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학생 공동체 문화에서 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미지(인문학부·09)씨는 “처음만난 사람끼리 술에 취해 서로 마음의 벽을 깨게 되면서 친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한혜정 교수(사과대·문화인류학)는 “언어나 소통이 없는 사회일수록 술을 통해서 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술 중심의 문화를 “저급한 수위의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얼마 전부터 이런 술 지배적인 MT문화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술’이 주체가 아닌 학생 주체의 진정한 공동체 문화로서의 MT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대구한의대 한방스포츠의학과의 경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신입생 환영회를 술 없이 진행했다. 기존에 ‘마시고 놀자’ 일색이었던 MT 프로그램이 ‘인간윷놀이’나 ‘퀴즈’ 등의 다양한 게임과 자기소개 등으로 채워졌다. 이와 더불어 지난 26일 열린 ‘제1회 전국 대학생 MT페스티벌’도 무알콜로 진행돼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다. (아래 기사 참조)

우리대학교에서도 기존의 새내기 새로배움터, MT를 벗어나보자는 의견이 있다. 조 교수는 “오는 2010학년도부터 신입생을 과 단위로 모집하게 되면서 ‘과’의 특색에 맞는 MT를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예를 들어 문화인류학과의 경우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을 가는 등 현지조사와 더불어 MT를 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과제 전환이 이뤄진 뒤 단기간에 이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른 방법의 제도가 정착되는 동안 MT가 활성화 되려면 MT에 참여하는 교수와 학생회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MT 문화가 기존의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변화하는 원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있다. 조 교수는 “2000년대 들어 경쟁이 높아지고 소비성향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이 캠퍼스 밖에서 놀게 돼 대학 캠퍼스는 의미없는 공간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가 주변은 지역의 ‘중심상권’으로 탈바꿈했고 그 목표가 되는 소비자의 대부분은 해당 대학 학생들이다. 학생들 역시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은데, 대학 내의 공동체 문화가 점차 사라진 대신 개인주의적 소비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 중심적인 대학생활을 영위하던 학생들은 점차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학문화’에 대한 성찰적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나성채(교육·09)씨는 “다른 대안의 놀이문화가 없기 때문에 MT에서 술을 마신다고 생각한다”며 “대안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 ‘죄인’ 취급받았던 술 못마시는 사람이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게된 사회적 분위기도 이에 한 몫 했다. 기업에서도 회식자리를 문화행사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비슷한 현상 중 하나다.

이제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할 때

한편 고영철(사회·03)씨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대학교 입학생 중 여학우들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기존의 대학 술 문화는 남성위주의 문화로 여성들은 소수자로서 배제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 내에 여학우들의 비중이 높아지게 되면서 기존의 술 문화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상상공장 류재현 감독은 “대학이라는 공간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 사회에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하지만 기존의 문화를 답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대학생인 우리는 ‘대안’이라는 말과 친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생들은 이제 제대로 놀기 위해 여태 미뤄왔지만 해야만 하는 고민, ‘대안 찾기’ 를 시작하고 있다. 대안 MT로 시작된 이런 움직임이 확장되기를 기대해 본다.

허찬회 기자 ganapati@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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