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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표지분석보고서표지 읽기로 알아본 출판문화
  • 정지민 기자
  • 승인 2009.09.19 17:00
  • 호수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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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 두 책은 사실 같은 내용이다. 미국판 원작 『Prep』이 우리나라 출판사의 손을 거치며 이렇게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반면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처럼 거의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외국 서적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과정에는 무슨 일이 있길래 어떤 표지는 대변신을 겪고 어떤 표지는 살아남는 걸까.

도서출판 비채의 이승희 편집자는 “사실 원서 표지 그대로 가는 것이 출판사로서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새롭게 기획된다. 문학동네 저작권팀 김미정 팀장은 “우리나라 독자들의 정서를 고려해 표지를 선정한다”고 말했다. 취향의 문제인 만큼 ‘이런 표지는 이렇게 고친다’ 같은 절대적인 방법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까지의 판매 통계에 비춰보면 바꿔야 할 표지는 대강 걸러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목과 저자명이 표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종류다. 김 팀장은 “이런 표지는 일단 글자 크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 그런 변형을 거쳤다. 미국판 표지의 일러스트와 느낌은 살리되 글자 크기는 줄여 번역 제목과 함께 배치했다.

마케팅 전략에 맞춰 표지가 수정되기도 한다. 『사립학교 아이들』의 담당 편집자였던 김영사 문학팀 황은희 팀장이 노린 타깃 독자는 고등학교 여자아이들이었다. 이 전략은 맞아떨어져 저자와 작품의 지명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6만부 이상 팔렸다. 타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청소년물의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독자들은 지나치게 예뻐 ‘상업적’으로 느껴지는 표지에 불만을 표했다. 한 소녀의 성장담인 동시에 미국 사회의 계급문제를 주시하는 깊이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용 도서 혹은 가벼운 연애소설에 어울릴법한 표지가 입혀졌다는 것이다. 황 팀장은 “그런 비판에도 일견 동의하지만, 어린 독자들도 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다”며 “결국 그런 지적도 책이 널리 읽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이런 전략이 독자들을 오도하는 측면은 있으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잡는다면 표지로서 제 소임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서적 측면에 대한 고려나 마케팅 전략상의 수정이 아니더라도, 대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표지들이 화려해진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이에 대해 “확실히 독자들 눈에 띄려는 경향이 과도한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지역도서관, 학교 등 공적 수요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적어 출판사들이 독자들의 호주머니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승희 편집자는 “표지 자체가 광고 효과를 내야 해서”라고 분석한다. 서평지, 북클럽, 지역도서관 등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잘 마련돼 있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그런 기반이 부실하다. 일간지의 주말 서평란이 거의 유일하다. 이처럼 책을 노출할 경로가 부족한 상황에서 예쁜 표지는 효과적인 광고 수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판 뒷표지가 짤막한 소개 문구 몇 개만로 채워지는 반면 우리나라 책은 띠지까지 동원해 독자서평, 해외 판매량, 유명인 추천사 등의 정보를 싣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며 표지가 바뀌는 것은 원래 표지로는 수익이 날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될 때다. 제목만 크게 박혀있거나 그림도 없이 저자 이름만 들어간 표지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팔리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팔린다. 믿을만한 서평지가 신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도서관은 대중적 인기는 없어도 학문적으로 가치 있는 도서들을 충분히 소화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 책 표지들이 더 화려하고 상업성이 짙은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예쁜 표지를 선호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책 읽는 문화,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구조적 기반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이다.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자료사진 「연세춘추」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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