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이라도 나가볼라치면
1년 내내 삭발, 삼보일배, 고공농성
67일 단식, 96일간의 단식을 해봐도
끄떡없는 세상 앞에서
다시 초라하게 겨울바람 앞에
나앉아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동지들의
한숨이 먼저 들려오고

- 송경동, 「시를 쉽게 쓸 수 없는 세상
    에 대한 야유」 중에서

지난 2005년 4월 기륭전자 파견직 노동자들은 문자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이런 회사의 조치에 반발해 노동자들은 그해 7월 전국금속노조(아래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소속으로 기륭전자분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노조 결성 이후에도 기륭전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추가적으로 해고했다. 이에 맞서 시작된 기륭전자분회의 투쟁(아래 기륭투쟁)이 오늘을 기준으로 1천490일 째를 맞았다.

기륭노동조합(아래 기륭노조)은 초기부터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왔다. 지난 2005년 8월의 전면농성파업을 시작으로 2차례의 고공농성, 전 조합원의 단식농성이나 김소연 분회장의 96일간 단식투쟁 등이 그 예다. 특히 2008년에는 ‘촛불시민’과 결합된 연대투쟁으로 회사를 교섭테이블로 이끌어 냈다. 그해 10월에 있었던 교섭에서 회사는 제3의 회사 설립 후 농성자 10명을 1년 고용보장하며,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자회사로 전환할 것인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안은 자회사에서 복직희망자인 22명을 고용해주길 바라는 노측의 요구와는 차이가 있었고, 협상은 결렬됐다. 쉽게 줄어들지않는 노사의 간극으로 투쟁은 장기간 지속됐고, 이 과정에서 200명이었던 투쟁 조합원은 현재 10명으로 줄어 현재 기륭전자의 투쟁동력은 많이 약해져있다.

2008년과 달라진 현실

또한, 최근 쌍용차 투쟁이나 용산투쟁 등 여러 사건이 발생하면서 기륭투쟁공동대책위원회(아래 기륭공대위)를 구성했던 많은 연대단위들이 쌍용차 투쟁이나 용산투쟁 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이로 인해 기륭노조와 함께하는 연대의 수도 많이 줄었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은 “기륭전자 공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래군 씨와 송경동 시인은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에 소속해 활동하는 등 (기륭투쟁에 투입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7월 비정규직법안 처리와 관련한 투쟁에서도 기륭노조는 상황이 달라 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계약직 근로자에 적용되는 법률인데 비해서 기륭투쟁은 ‘파견직 노동자’에 관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설상 가상으로 사측과 협상이 결렬된 후 주요 신문들은 ‘민주노동당이나 금속노조등도 기륭노조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이제 기륭전자 투쟁은 무력화 됐다’는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런 보도로 기륭투쟁에 대한 여론이 악화돼 그들의 투쟁은 더욱 고되고 외로워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륭전자의 투쟁이 이제 마무리될 때가 됐다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부소장은 “본인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개별투쟁으로서 기륭투쟁은 무익한 투쟁이다”며 “기륭전자 투쟁을 마무리 짓고 사업장을 넘어서서 비정규직문제라는 큰 틀에서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의견에 대해 김소연 분회장은 현재 기륭투쟁은 유지한 채 사회적인 연대를 강화해 활동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분회장은 “철거민, 비정규직, 해고된 정규직들 등 약자들끼리 연대를 통해서 일을 해결하려 한다”며 “비노동친화적인 이명박 정부에 대한 투쟁을 강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비정규직투쟁에 대한 사회적인 동력을 되살리기 위한 여러 사업이 계획중에 있다.오는 24일(수) 3시에 명동성당에서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아래 비없세)’ 간담회가 있다. 비없세는 기륭공대위가 비정규직문제를 다루기위해 확장돼 만들어진 시민단체 연합이다. 문소장은 “비없세를 복구하고 간접고용문제에 대한 직접조사등 여러 제안들에 관해서 논의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기륭전자 신사옥앞에서 기륭전자분회 하반기 투쟁선포 결의대회가 열렸다. 전국철거민연합,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금속노조 남부지역지회 등 많은 연대단위가 참가해 기륭투쟁에 힘을 보탰다. 취재가 진행될 때 까지도 회사측으로 부터는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김 분회장은 회사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 같냐는 질문에 “(친기업적인)현 정부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양적으로 쌓아올린 투쟁의 결과가 질적인 변화로 바뀌는 때가 있지 않겠냐”며 작은 희망을 내비쳤다.
결의대회에서는 헬륨풍선에 사람들의 기원을 담아 하늘에 날려보내는 행사가 있었다. 날린 풍선에 담긴 모든 사람의 마음처럼 비정규직이 철폐돼 ‘가난하더라도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허찬회 기자 ganapati@yonsei.ac.kr
사진 박민석 기자 ddor-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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