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이명병 피해자를 만나다

김해에 사는 한광기(43)씨는 시끄러운 곳에 가지 못한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심지어 귀를 막고 자리를 피할 때도 있다. 그래서 직업도 혼자 조용히 할 수 있는 가스배달을 선택했다. 한씨가 이토록 소리에 예민해진 것은 23년 전 군 복무를 하던 때부터다.

지난 1987년 11월, 야간경계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온 한씨는 방한모를 단정히 쓰지 않았다며 당시 내무반장에게 폭행을 당했다. 손바닥과 주먹이 무자비하게 가슴과 머리를 구타하던 중 한 대가 왼쪽 귀를 정확히 가격해 고막이 터졌다.

하지만 훈련병이던 한씨가 할 수 있는 일은 화장실에 가 흐르는 피를 닦아내는 것뿐이었다. 한씨는 “고막이 터진 것 같다고 얘기를 꺼내기엔 선임이 너무 무서웠다”며 “윗선에 보고할 엄두가 나지 않아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서러움에 눈물을 흘린 것도 잠깐이었다. 바로 그 다음날, 더 큰 일이 터졌다.

야간에 영점사격을 하는데 전날 한쪽 귀를 다쳐서인지 실력이 평소 같지 않았다. 평소에는 10발정도 쏘고 훈련을 마쳤지만 그날은 총 40발의 총알을 쏜 후에야 총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격이 끝나자마자 귀가 이상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러다 평생 귀머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한씨는 이후 보름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교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훈련을 틀리기 일쑤였고 기합과 질책도 자주 받았다. 보름 후 조금씩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안도했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로 소리가 ‘너무’ 들렸다. 하루 종일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들리는 이명(耳鳴)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평생을 안고가야 하는 병

이명이란 몸 밖에 음원이 없는데도 잡음이 들리는 증상으로 난청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시끄러운 소리에 자주 노출되면 달팽이관 안에 있는 청각신경인 유모세포와 섬모세포가 손상돼 이명을 유발한다.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에 이상이 생겨 어지럼증이 오는 경우도 있다. 한씨는 “사람의 귀가 90dB까지 견딜 수 있는데 사격할 때 총에서 발생하는 폭발음은 170dB정도”라며 “귀마개를 착용하지 않은 채 총 소음에 반복 노출돼 생기는 고질병”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자대배치를 받은 후 보름에 한 번 정도 외래병원의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군의관은 “아직 이명에 대한 치료법이나 수술이 개발되지 않아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제대 후 종합병원이나 개인 이비인후과에도 가봤지만 번번이 평생 동안 참고 사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명은 사회로 나갈 때 큰 걸림돌이 된다. 정영범(31)씨 역시 영점사격 후 양쪽 귀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지만 훈련소 조교는 “원래 총 쏘고 나면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제대 후 일하던 회사에서 정직원이 되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을 때 이명이 문제가 됐고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해야만 했다. 정씨는 “이명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아 방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성식(39)씨는 “아이를 키워야 하지만 직장생활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면접을 보러 가더라도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번번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얘기를 하는 동안 두세 번 되묻거나 종종 귀를 가까이 댔다. 사람이 많은 곳에 나올 때는 수시로 약을 먹어야 어지럽지 않다며 약을 꺼내 보이기도 했다.
이명은 일상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씨는 “내 귀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남들도 들리지 않을까 봐 항상 크게 말하는 것이 습관처럼 됐다”고 말했다.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볼 때도 볼륨을 가장 크게 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고 잠이 들어 의식이 없어질 때까지 귀에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른다.

하지만 의사들조차 이명에 대한 문제의식이 낮다. 복무 중 저격수로 활동했던 유영철씨가 진단서를 끊으러 병원에 갔더니 오히려 의사는 이명이 그렇게 불편하냐고 물었다. 심지어 왜 고음역대에서만 청력이 떨어지냐고 묻는 의사도 있었다고 했다.

국가가 모른 체 하는 사람들

나라를 지키다 이명이라는 병을 얻었지만 ‘공상(공무수행중 상이)’인정을 받은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군 진료기록을 가져와야 공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예전에는 복무 중 병원에 가는 것이 어려웠을 뿐더러 갔다 왔더라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나 시간이 오래 지나 없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동기나 선임의 인우보증서가 필요하지만 사회에 나와 뿔뿔이 흩어진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피해자들이 군 복무 중 이명이 생겼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해 아무런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한씨 역시 6년간 끊임없는 소송을 벌인 끝에 겨우 공상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보훈처에서는 “공상으로 인정된 이명과 난청에 대해 치료비를 지원해 주니 진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그는 어차피 낫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약을 먹지 않고 있다. 

이어 국가 유공자 신청도 했으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명을 앓는 사람들은 4천㎐이상의 고음역이 손상된 경우가 많은데 상이등급을 결정할 때는 500, 1천, 2천㎐의 청력역치만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잘 들리는 부분만 측정하니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리 없다. 이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장애등급을 판정할 때 3천, 4천, 6천㎐까지 측정하는 것과 비교된다. 한씨는 “국가 유공자의 벽이 너무 높아 인정받은 사람이 2~3명밖에 없다”며 “보훈처 측에서도 제한된 예산으로 많은 인원을 감당하려니 무리가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더 이상의 피해는 없어야 한다

군 이명은 현재 4천여 명 정도가 앓고 있으며 현역 군인들 중에도 이명환자가 있다. 한씨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 ‘군 이명 피해자 연대’에는 제대한 사람들 외에도 종종 휴가 나온 군인들이 이명과 관련된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지난 1991년부터 군대 내 귀마개 보급이 의무화됐지만 일선 사병들에게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씨는 “현역군인들이 계속 카페를 찾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며 “몇 백원짜리 귀마개가 이명을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귀마개를 끼면 60~70dB정도로 소음이 줄어든다. 한씨는 귀마개가 없으면 휴지나 천이라도 찢어 귀를 꼭 막으라고 충고했다.

이명병 환자들은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왜 나한테만 이런 몹쓸 병이 생겼냐고 자괴감에 빠지며 심하면 대인기피증이 생기기도 한다. 고관규씨는 “국가가 의무만 지워놓고 보상해 주지 않는다”며 “아들은 이민을 보내서라도 군대를 안 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복무하던 중에 병을 얻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을 국가는 모른 체하고 있다.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주고, 더 이상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활동을 펼치는 일이 시급하다. 무조건적인 외면보다 하루빨리 문제에 대한 직시가 필요한 때다.

 유수진 기자 ussu@yonsei.ac.kr
사진 추유진 기자 babyazaz@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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