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읽는 일이 의미 있는 이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 패션잡지의 편집장인 미란다는 ‘패션 트렌드’를 얕보는 고지식한 주인공 앤디를 향해 쏘아붙인다. 지금 네가 입고 있는 낡은 스웨터의 파란색은 정확히 말하면 ‘세룰린 블루’이며, 몇 해 전 명품 브랜드의 컬렉션에서 유행 컬러로 선보여진 뒤 돌고 돌아 할인매장에 가닿은 끝에 네가 입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도 ‘이게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냐고 묻는다. 이처럼 현대 소비사회에서 트렌드는 ‘트렌디’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트렌드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앤디가 별 생각 없이 입고 있던 스웨터는 몇 해 전 유행 컬러였던 '세룰린 블루' 색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트렌드는 ‘올 가을 유행 예감 신상’과 같은 패션에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 트렌드 워칭 회사 (주)리드앤리더의 김민주 대표는 트렌드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일시적 유행에 해당되는 패드(fad), 3~5년 가까이 유지되는 트렌드(trend), 20~30년이 걸리며 좀 더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메가트렌드(megatrend)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트렌드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은 대체로 패드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오늘의 토픽으로 뜬 유기농 식품은 건강과 환경을 중시하는 ‘로하스’라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까지 반영하고 있다. MD들이 내년 유행 아이템을 예측할 때 고려하는 것은 디자인만이 아니다. 메트로섹슈얼*, 콘트라섹슈얼**의 등장과 그들의 욕구까지 들여다본다. 디시인사이드는 유행어 제조집단인 동시에 현대 소비문화의 포스트모더니티가 드러나는 공간이자 IT문화의 정점이다. 개그맨들의 퍼포먼스는 당대를 사로잡은 코드가 녹아든 몸짓이다. 잠시 반짝하고 사라지는 패드들도 크게 보면 동시대의 사람들을 매혹한 트렌드, 나아가 메가트렌드까지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주변의 작은 변화들이 차례로 패드에, 트렌드에, 메가트렌드에 속해 있다면 트렌드를 읽는 기술은 기업의 마케팅 전문가만이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의미 있다. 김 대표는 트렌드를 “몰라도 되지만 모르면 몹시 불편한 것”으로 정의했다. 트렌드는 현재 세계가 나아가고 있는 큰 흐름이므로, 이 방향성에 대해 무지하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정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직업을 선택할 때 트렌드의 맥을 짚고 있다면 좀 더 유망한 직업을 고를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열심히 일해도 보상은 형편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샤넬은 “디자인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샤넬이라는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디자인은 한 두 시즌을 유행하다 사라질 뿐이지만 그가 창조한 간소하면서도 현대적인 스타일은 시대를 풍미했다. 둘은 별개가 아니라 디자인 속에 스타일이 녹아 있는 것이다. 패드와 트렌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패드를 읽는 일 역시 하찮지 않다. 반짝 유행이라 해도 어쩌면 한 시대의 트렌드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메트로섹슈얼: 패션과 외모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남성
**콘트라섹슈얼: 결혼, 육아보다 사회적 성공과 고소득에 중점을 두는 여성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자료사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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