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마음에서 트렌드를 읽는 사람들

“MD*란 장사꾼이다.” 추상수 기획MD가 국내 최초의 MD전문 잡지「MIDAS」의 창간호에서 밝힌 MD의 정의다. 이 정의는 MD라는 직업의 본질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MD란 판매를 위해 탄생한 직종이기 때문이다. MD 전문 학원 아카비전 유혜숙 원장 역시 “MD는 생산과 판매의 전문화 과정에서 판매에 특화된 상품 기획자로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로 시작해 패션 MD를 거쳐 현재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GPM파트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도형씨는 과거 패션 MD일을 하면서 “지금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은 무엇인지를 가장 큰 화두로 삼았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패션 트렌드가 기획되는 것이다. 나이키 스포츠 의류부 머천다이징팀 박준식 과장도 “모든 정답은 소비자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 MD는 의류 상품을 더욱 잘 팔기 위해서 소비자가 원하는 패션 트렌드를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트렌드를 예측하는 통찰력을 패션업계에서는 ‘트렌드 인사이트’, ‘소비자 인사이트’라 부른다. 이 통찰력은 패션 MD의 기본 자질이다. 패션 MD가 통찰력을 쌓는 방법은 주로 시장 조사다. 이외에도 신문과 패션 잡지를 통해 전체적인 산업의 맥을 읽기도 한다.

패션 MD는 다방면에 밝아야 한다. 어느 한 분야만 알아서는 트렌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원장은 “기획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나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패션 MD가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실제 패션 MD들은 기본적인 트렌드 인사이트 능력은 출중하지만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박준식 과장은 “나이키와 같은 외국계 스포츠 브랜드는 개발·디자인·생산·바잉(구매)의 분업이 매우 잘 돼있다”며 “이들이 맞물려 돌아가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을 선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또 패션 MD는 혼자만의 힘으로 트렌드를 예측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는 트렌드 분석을 의뢰하는 외부 전문 디자인 컨설턴트를 따로 두고 있으며 회사 내부에도 자체 트렌드 분석 전문 기관이 있다. 패션 MD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이다.

나이키, 리바이스와 같은 외국계 업체는 한국에 디자인실을 두지 않고 본사에서 전체적인 디자인을 모두 관할한다. 그래서 바잉MD가 필요하다. 현지의 바잉MD들은 본사에 가서 수많은 제품 중에서 각지의 실정에 맞는 제품들을 고르는 작업을 한다. 나이키에서 바잉MD로 활동하고 있는 박준식 과장은 “본사에서 제품을 고르는 과정에서 한국 나이키 천 여개 매장의 스타일이 기획된다”고 말했다. 현재 나이키에서는 이런식으로 매년 네 차례의 시즌 준비를 일 년 앞서 진행하고 있다. 일 년 후의 트렌드를 미리 만들어가는 것이다.

삼성전자 박도형 과장은 전직 패션 MD였지만 지금은 유럽과 러시아 지역 휴대폰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얼핏 패션과 전자 업계는 매우 상이하게 보인다. 하지만 정작 박도형 과장은 “둘다 상품 기획으로서 그 본질은 같다”고 말한다.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성공하면 트렌드가 된다. 지금껏 패션 MD가 창조해왔던 트렌드는 ‘소비자’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MD: 상품화계획 또는 상품기획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 Merchandiser

이승재 기자 nomadicsou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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