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 점의 문화유산에 담긴 조상들의 얼굴을 통한 문화사 읽기

영국의 속담 중에는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의 기분, 성격에서부터 삶 전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인의 얼굴을 살핀 책이 있다. 바로 황규호 씨가 엮은 『한국인 얼굴 이야기』다.

지난 1994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한국인의 얼굴’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렸다. 황규호 씨는 당시 서울신문사 문화재 및 종교담당 기자였다. 전시회를 통해 한국인의 얼굴에 관심을 가지게 된 황 씨는 이를 기사화해 매주 연재했다. 『한국인 얼굴 이야기』는 흙인형, 기왓장, 불·보살상, 장승, 고분벽화, 회화, 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에 담긴 한국인의 얼굴을 시대 순으로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 노현리 두루봉동굴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은 이미 20만 년 전에 사람얼굴 형상을 만들어 냈다. … 코는 비록 없더라도 눈과 입은 아주 뚜렷하다. 귀도 어느 정도를 형상화한 두루봉 인물상은 한마디로 귀여운 모습이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감정의 희로애락에 따라 무한한 표정을 드러내는 얼굴을 소중히 여기고 각별한 관심을 두었던 모양이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머리숭배 신앙을 가지고 살았다는 학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청동기시대를 지나 삼국시대에 이르면 얼굴은 우리의 삶을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한다. 신라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된 흙인형들은 신라인들의 얼굴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다. 그 중에서도 죽음을 슬퍼하는 흙인형들에 나타난 신라인들의 조형술은 가히 놀랄만하다. ‘무릎꿇은 인물상은 슬픔이 너무 커서 망연자실한 것인가, 눈을 크게 뜬채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다. … 그 옆에 서 있는 인물상은 오랜 슬픔으로 해서 지친 모습이다. 입을 다물 힘도 없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만큼 기력을 잃었나보다.’ 이런 흙인형들의 슬픈 얼굴은 죽음에 대한 신라인들의 전반적인 인식과 함께 신라의 주종관계를 반영한다. 흙인형들의 출토지가 주로 신라 지배자급 무덤이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의 죽음에 과장된 슬픔으로 반응함으로서 그들에 대한 충성심과 경외심을 나타낸 것이다.

조선 초기의 억불숭유 정책은 삼국시대와 고려 내내 진행돼 온 불교의 문화적 공헌을 저해했지만 조선의 초상화를 발전시켰다. 유교적 보본사상*을 바탕으로 초상화로 여러 조상들의 얼굴을 남긴 것이다. 책에는 여러 조선 문신들의 초상화가 소개돼있다.

그런데 조선 문신 이형상의 초상화는 그 중에 눈에 띈다. 그의 초상화는 자화상이다. 그는 얼굴이 길고 광대뼈가 나온 자신의 얼굴의 특징적인 모습을 두드러지게 묘사해 서양의 ‘캐리커처’와 같은 스타일을 보여줬다. 이는 자기 자신의 특징을 인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자아 발견의 의미도 가진다. 이처럼 그가 그린 얼굴에는 우리 조상의 해학과 함께 자아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다.

책은 이어서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장승의 얼굴을 살핀다. 마을 간의 경계나 이정표 외에도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장승은 근엄해 보이면서도 우리 조상들의 따뜻한 정을 담고 있다. ‘수장승 상원주장군의 눈은 호랑이눈을 닮았다. 일부러 무섭게 보이도록 돋을새김으로 호랑이눈을 만든 모양이다. 그런데 별로다. 눈꼬리가 비록 치켜 올라갔다 할지라도 사납기 보다는 오히려 점잖은 표정을 지었다. … 그래서 아무도 장승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무섭기보다는 점잖고 따뜻한 눈빛을 가진 장승은 그야말로 한국인의 총체적 얼굴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얼굴’하면 어떤 생각부터 떠오르는가? 쭉 찢어진 눈, 납작한 코… TV 속의 예쁘고 멋진 연예인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얼굴을 타박하고만 있지는 않은가? 우리 조상들은 그들의 얼굴을 소중히 여겨 그림으로 그리고 인형으로 만듦으로써 그 안에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담았다. 얼굴을 단순히 미와 추의 지표로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들의 얼굴 또한 후에 되돌아봤을 때 우리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 뿐 아니라 우리 시대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의 얼굴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할 때다.

* 보본사상:  자신의 뿌리를 찾고 그 줄기를 지키고자 하는 하는 유교사상.

문해인 기자 fade_away@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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