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닫히면서 민주주의도 같이 닫혀, 광장을 열기위한 시만단체의 활동 활발

‘대한문 앞 광장’, ‘시청 앞 광장’. 그리고 전 이명박 서울시장에 의해 잔디공원이 조성된 이후 불리게 된 ‘서울광장’은 1897년 고종 때 만들어졌다. 이후 이곳에서 지난 1987년 6월 독재 타도와 호헌 철폐를 외치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노제가 열렸다. 2002년 미선·효순 추모집회가 열린 곳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치로 정부에 대항하는 집회를 벌인 곳도 서울광장과 그 일대다. 하지만 2008년 촛불집회때 경찰이 집회를 진압하고, 5월에 차벽을 세워 시민들의 광장출입을 금지하면서 광장이 가지는 ‘모임’의 의미는 사라지는 듯 보인다.

서울광장이 ‘모임’의 의미를 가질 때면 모이고자 하는 시민과 해체하고자 하는 경찰이 치열하게 맞선다. 서울광장이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기에 이와같은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서울광장은 일상적인 목적을 가지고 모이는 탑골공원이나 여의도 광장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서울광장은 역사적으로 전국민적인 이슈가 있을 때 그와 관련된 시민들의 의사가 표출된 공간이었으며, 이러한 의사표현은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가져왔다. 지난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에 4·19혁명와 함께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왔던 것이 그 예다. 신교수는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서울광장의 개방 문제는 개방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관련된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나 농민들은 권력층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경로와 가능성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정당이나 미디어를 점령하고 있는 권력층이 여론을 형성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기에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이러한 현대 민주주의 상황에서 광장은 국민의 목소리를 권력층에게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한다. 신교수는 이러한 시민들의 표현이 억압돼 어느 한도를 넘게 되면 “허용되지 않은 공간에서 허용되지 않은 방식을 통해서 그러한 갈등이 폭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표출의 통로’인 광장이 사실상 닫힌 후에 이를 되찾기 위한 여러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광장조례개정 서울시민캠페인단의 ‘서울광장 사용권리 되찾기 주민조례개정 서명운동(아래 서명운동)’이다. 현행 조례에 의하면 서울광장 사용은 시장의 허가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으로 사용목적이 제한된다. 광찾사는 현행 사용신청제를 신고제로 바꾸고 집회를 포함한 다양한 공익적 행사가 개최될 수 있도록 개정하려 한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신민지 간사는 “주민조례개정운동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제도 중 하나로서 시민사회에서 시도해본 적이 많지 않다”며 “시민들이 직접민주주의 정치제도에 대한 경험을 쌓는데도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신간사는 “주민발의가 되면 시의회의원들이 8만 1천명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작년 3월 통과된 학교급식지원조례처럼 미뤄졌다가 결국은 통과될 것으로 보고있다”고 밝혔다.

신교수는 “여론조사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강렬한 요구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드러난다”며 광장을 ‘정치적 온도계’로 표현한 바 있다. 온도계를 가린다고 해서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갈등의 폭발’을 막기 위해서는 신간사의 말처럼 “약자를 위한 집회의 공간으로서 서울광장은 열려 있어야” 할 것이다.

허찬회 기자 ganapati@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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