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거듭해 온 한국만화, 고유의 정체성에 기반해 다음 100년 맞아야

한국만화의 효시는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의 삽화로 알려져 있다. 만평에 가까운 한 컷의 이 만화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항일 정신을 담아냈다. 시사만화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국만화를 주도했고, 대중들에게 세상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전쟁 후, 잡지를 비롯한 출판물이 잇달아 발행되면서 한국만화는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있는’ 만화 시대에 진입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밝고 건강한 어린이 세계를 표현한 아동만화였다. 특히 1960년대에 나타난 만화가게는 당시의 ‘코흘리개’ 만화고객들에게 방과 후 필수 순례코스로 자리 잡으며 아동만화의 보급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들어 성인만화가 주목받으며 한국만화 선두주자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시사만화, 실험만화, 컬트만화 등이 성인독자들의 취향을 충족시켰다. 만화가 더 이상 ‘아동용’이 아니게 된 것이다. 박수동은 『고인돌』에서 간략하고 투박한 그림체로 남녀간의 질펀한 정사(情事)를 표현해 코믹한 성인용 만화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이후 황미나를 대표주자로 등장한 순정만화는 여학생들의 ‘로망’를 자극해 인기를 끌며 한국만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이제 한국만화는 인쇄매체를 벗어나 드라마, 영화, 연극 등의 주요 소재로 활용되며 문화 산업의 핵심동력으로 성장했다. 박소희의 『궁』은 드라마로 제작돼 ‘한류’를 일으키며 국제적인 인기를 끈 대표적인 작품이다. 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도 최근 드라마로 만들어져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는 만화와 인터넷의 만남이다. 온라인공간으로 진출한 만화는 웹툰의 형태로 진화했다. 옛날 옛적 손에 침을 묻혀가며 한 장씩 넘겨 읽던 만화의 ‘손맛’이 마우스 휠을 굴리며 만화를 보는 신개념 ‘손맛’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만화는 지난 100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 왔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역사’나 ‘발전’이라고 불릴만한 결실을 남겼다. 하지만 그것이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만화통사』의 저자 만화평론가 손상익씨는 진정한 한국만화의 정립을 위해 “일본만화 표절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만화가 도입되는 단계에서부터 일본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지금까지도 일본만화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열악한 만화 창작 환경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이른바 스타급 작가들은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반면 대다수의 작가들은 거의 무보수로 작품을 연재하는 등 만화작가 사이의 양극화가 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는 우수만화인력 발굴 및 양성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정책·홍보팀의 강정연씨는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우수작가와 만화관련 업체를 유치해 만화창작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위원회’는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전시 △한국만화 100년 조사연구 사업 △국제시사만화 포럼 등 대단위 행사들을 통해 한국만화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기념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일(화)부터 3달간 이어진다. 정부에서도 한국만화를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 키우기 위해 향후 5년간 1천 42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 옛날, TV도 라디오도 없던 시대에 만화는 우리들의 웃음보따리이자 시대를 바라보는 눈이었다. 그리고 이제 만화는 책에서 뛰쳐나와 매체를 넘나들며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지나간 100년을 돌아보고 ‘한국’만화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을 다지는 것이 다가올 새로운 100년을 맞는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박소영 기자 thdud0919@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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