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학 『자전거 여행』 저자, 김훈을 만나다

당신은 ‘기행문학’이라 하면 어떤 책이 떠오르는가? 뉴욕에서의 쇼핑 일정과 요령을 소개한 책? 유럽 각지의 손꼽히는 레스토랑을 돌아본 책? 여기 조금 색다른 책이 한 권 있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만한 해외 각지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음식, 패션과 같은 특정한 주제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저자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본 풍경들과 그때그때의 느낌을 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행문학’의 대표작으로 떠올리는 책, 『자전거 여행』의 저자 김훈과 그의 책 『자전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보통 기행문학에서는 저자의 여정에 따라 각 지역에 대한 내용이 서술된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을 읽다 보면 여정을 이어가는 도중에 특정 소재 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그 중 ‘길’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유난히 인상적이다.

‘산맥을 넘어가는 길들은 산의 가파른 위엄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지 않는다. 길들은 산허리의 가장 유순한 자리들을 골라서 이리저리 굽이치는데, 이 길들은 어떠한 산봉우리도 마주 넘지 않고 어떠한 산꼭대기에도 오르지 않으면서도 고갯마루에 이르러 마침내 모든 상봉우리들을 눈 아래 둔다. … 19번 국도의 표정은 밝고 화사하다.’

이에 대해 김씨는 “여행하는 지역과 관련이 없더라도 여행하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소재에 대해 썼다”고 말한다. 단지 어디를 여행했는지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을 여행하던 순간 떠오른 인상들까지도 붙잡아두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하며 다녔던 많은 길들의 인상들이 모여 흥미로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자전거 여행』에는 ‘사람’ 이야기도 참 많다. 김씨는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주로 시골로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농부, 어부, 분교 아이들, 승려들 등 도시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돌산도 남쪽 해안선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밭을 가는 늙은 농부한테서 봄 서리와 봄볕과 흙과 풀싹이 시간의 리듬 속에서 어우러지는 사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 밭두렁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자꾸 캐물으니까 늙은 농부는 “이 사람아, 싱거운 소리 그만하고 어서 가. 그게 다 저절로 되는 게야”라고 말했다.’

김씨는 “자연의 섭리를 평생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분들을 보며 우리 인간에게도 희망이 있구나 싶었다”고 했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도, 신문이나 책을 읽은 적도 없는 이들에게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 나와 이웃의 관계가 어때야 하는지를 배웠다는 것이다. 이런 체험은 그의 책 여기저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자전거 여행』에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오랜 시간 동안 기자와 소설가라는 두 가지 직업을 가졌던 김씨. 그는 기행문학의 매력을 평범한 사물에 자신의 생각을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사는 눈에 보이는 그 자체를 주관을 배제한 채 보여주는 글이고 소설은 현실에서 벗어나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글이다. 반면에 기행문학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작가만의 느낌대로 기록함으로써 기사나 소설 양쪽의 즐거움을 모두 가진다는 것이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소설로 유명했던 김씨가 『자전거 여행』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생각 외로 소박하다. 50세 때 처음 타 본 자전거가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달릴 때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은 자전거를 저어서 나아갈 때 흘러와 마음에 스민다. 『자전거 여행』에는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길은 순간적인 존재이기에 시간에 따라, 또 누가 그 위를 걷고 있냐에 따라 다른 길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걷는 길도 어제의 길과 다른 새로운 길이다. 하지만 그것을 새롭게 하는 것은 흘러가는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아닐까.

문해인 기자 fade_away@yonsei.ac.kr

자료사진 김 훈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