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요즘 들어 전혀 식욕이 없다. 아침을 거르는 것은 이미 일상이 돼버렸고 점심과 저녁도 커피 한 잔으로 때우기 일쑤다. 몸이 너무 힘들어 하루에 10시간씩 자는 것은 기본이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매사에 관심이 없다. 짜증도 늘고 가족들한테 화내는 일도 잦다. 그러나 ‘조금 쉬면, 이번 학기만 끝나면 괜찮겠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대학생 정신건강 빨간불

상담센터에서 실시하는 심리 검사에 따르면 A씨는 상당한 정도의 우울 상태에 놓여있는 경우다. 상담센터에서는 이런 상태가 두 달 이상 지속되는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씨와 유사한 상태를 겪고 있는 대학생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가 서울 소재 3개 대학 571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힘들어 도움을 받고 싶다는 대학생의 비율이 97%나 된다. 정신건강 위험 신호를 보인 비율 역시 10%에 이른다.

대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주요인은 무엇보다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우울 증세다. 지난해 분당 서울대병원이 수도권지역 16세 이상 3천3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대학생의 비율은 12%에 달한다. 이는 성인 평균인 9.6%에 비해 높은 수치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우울 증세가 개인 내적 요인에 의해 심화되면 자살까지도 고려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한양대 상담센터에서 실시한 실험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 해 본 대학생의 신뢰도* 계수는 80에 이른다.

이 연구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의 신뢰도 계수는 △일상생활 스트레스(91) △대인관계(81) △이성관계(81) △학업문제(80) △경제문제(79) △장래 및 진로문제(76) 순으로 높다. 이는 고등학교시기에 비해 급격히 넓어진 대인관계와 관계의 성격 변화에 대한 대처방법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유발하는데 비중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늦은 진로고민, 정신건강 위험해

진로로 인한 고민 역시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고등학교에서 체계적인 진로지도가 부족하고 사회적으로도 고학력을 선호하는 추세가 대학에서의 진로 고민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김아무개(법학·08)씨는 “재수까지 해가며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하다”고 고백했다.

대부분의 중고생들은 자신의 적성이나 진로를 고민하기보다 대학 입학 자체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한다. 이런 풍토 때문에 많은 대학생들은 때늦은 진로고민을 하게 된다.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자아 정체성의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압박감과 불안, 혼란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사회에 적응할 때 문제를 낳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진로결정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대학생들이 취업에 실패할 경우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요인인 자아 존중감을 크게 약화시켜 심한 경우에는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대학생 맞춤 프로그램 필요해

대학생 시기는 심리학적으로 청소년 후반기로 분류된다. 이 시기에 나타내는 우울증은 특성상 성인기와 유사하지만 충동적 행동이나 약물남용, 행동장애가 동반될 가능성이 있다. 또 청소년 후반기는 우울한 기분이나 분노감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자살을 계획하기도 쉬운 시기다. 이와 같은 정서적 차이를 제외하고도 대학생들은 청소년이나 성인 집단과는 다른 외적·사회적 요소로 인해 정신건강을 위협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만 있을 뿐 대학생을 위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따라서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대학에 배치된 상담 센터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정신적 문제를 경험하는 학생 수에 비해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고 있는 학생들은 현저히 적다. 이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홀로 문제를 안고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자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육체적 건강의 문제처럼 정신적 건강의 문제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의 문제를 홀로 간직하기보다 상담센터나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과 같이 외부적 도움에 마음을 여는 것,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다.

*신뢰도: 검사점수가 시간의 변화 따라 일관되게 나타나는 정도


김규민 기자 memyself_i@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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