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블랙박스 설치와 사생활 침해 논란

택시 내 설치돼 있다던 CCTV는 전부터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범죄 및 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가 고려됐으나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이 계속 따라다녔다. 몇몇 택시들이 비밀리에 CCTV를 설치해 그 사실을 모르고 탑승했던 승객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사실 차량 내에 설치하는 CCTV를 일컫는 정확한 표현은 ‘차량용 블랙박스’다. 블랙박스란 원래 비행기에서 비행 상황 자료를 자동으로 기록하는 장치인데, 항공 사고 발생 시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차량용 블랙박스의 경우 영상뿐 아니라 음성도 기록하며 GPS 등의 부가 기능이 곁들여진 경우도 있어 CCTV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지난 2000년 초에 우리나라에 도입됐으며, 한 TV 프로그램에 소개돼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굳이 목격자를 찾을 필요 없이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택시의 경우에는 교통사고 발생 시의 원인 규명 외에 승객과 택시 기사간의 다툼을 막고 범죄 가능성을 차단하며 택시회사에서 택시기사의 업무를 감시하는데 이용하는 등 다양한 쓰임새가 모색됐다. 택시기사 아무개씨는 “CCTV를 설치하고 그 사실을 써 붙이니 승객들이 태도를 조심하기 시작했다”며 만족해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 서울시는 택시 내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지난 4월 21일 개회한 제215회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는 택시요금 조정안과 함께 ‘블랙박스 설치를 위한 조례 개정안’이 다뤄졌다. 서울시의회 이종필 의원이 내놓은 조례안은 택시에 차량용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근거를 규정하고 있다. ‘블랙박스 설치 차량은 외부에 표지를 부착할 것’, ‘교통사고 처리 등 특정 사용목적이 있을 때만 이해관계자에 한해 기록물을 제출할 것’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서울시 측은 “(택시 내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는) 언론을 통해 보도될 때마다 사생활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보호법이 발효된 후 이를 종합해 상세 사항을 결정할 것”이며 “아직 구체적으로 언제 시행될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오는 9월께 발효 예정이다.

택시 운전기사들은 대체로 차량 내 블랙박스 설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서울 개인택시 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이미 서울시에서 입법을 예고했으므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면서도 “현재 조합원의 절반 정도가 설치하고 있으며 자율적으로 설치가 진행될 것 같지만 비용 예산 책정해서 지원해 준다면 우리로서는 반가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생활 침해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 없이 차량용 블랙박스 의무화를 법규화하는 것은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의 발효와 함께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백지원 기자 kaleidoscop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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