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램

사진기도 필름도 없이 사진을 찍는다?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포토그램’기법이라면 가능하다. 포토그램은 인화지*와 현상약만으로 물체를 찍어내는 사진 기법이다. 인화지에 찍고 싶은 물체를 얹어 두고 빛을 쪼이면 물체의 외곽선과 투명도에 따라 인화지에 실루엣이 맺힌다.

포토그램은 사진 역사의 시작부터 있어온 가장 오래된 사진 기법중 하나이다. 사진술을 개척한 W.H.F.톨벗을 비롯해 외국의 많은 작가들이 1830년 무렵부터 이 기법을 써왔다. 포토그램이 현재 생소한 기법이 된 이유에 대해 사진 작가 최광호 씨는 “포토그램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지만, 너무 쉽기에 작가들이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작업하기 쉽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많은 포토그램 작업을 했다고 한다. 필름 값들일 필요도 없이 인화지에 원하는 물체만 올려놓아 빛을 주면 완성되는 것이 바로 포토그램이기 때문이다.

포토그램으로 남겨지는 형태는 마치 X-ray 사진과 같아 강렬한 인상을 준다. 빛이 쪼이는 인화지의 부분은 검게 나오고, 물체가 가로막은 부분은 희게 나와 물체의 외곽선과 형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빛이 통과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정도에 따라 다른 명도의 회색 그림자로 표현된다.

톨벗은 인화지에 나뭇잎이나 레이스를 얹고 빛을 쬐여서 물체의 투명도에 따른 흑백의 변화를 매혹적으로 보여줬다. 색깔 있는 인화지를 쓸 경우 다양한 색깔을 표현해 낼 수 있어서 더욱 환상적, 몽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포토그램 작품들은 일반 필름으로 찍어낸 사진처럼 세부적으로 형태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는 외곽선과 색의 농도만으로 형태가 표현되어 보통의 사진보다도 추상적이고, 암시적인 인상을 주는 예술 사진이 된다.

최 작가의 대표적인 포토그램 작품은 전시회 때마다 선물로 받은 화분들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다. 그는 “선물로 받은 고마운 화분들을 인화지에 올려놓을 때마다 생동감과 재미를 느낀다”고 작업의 즐거움을 말한다.

더욱 흥미로운 그의 작품은 사람의 몸을 이용한 것들이다. 뜻이 통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설득해 인화지 위에 눕게 하여 몸의 형태를 찍는다. 그러면 새카만 인화지에 하얗게 몸의 자욱이 남게 된다. 최 작가는 벗은 몸으로 작업하는 포토그램에 대해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전한다.

“내 몸의 실체를 인화지 위에서 확인하고 내 의식과 대화하는 통로이다. 내가 나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다만 거울을 보는 방법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울로 내 모습을 확인하듯이 사진으로 나를 찾고 내 모습 찾기. 그것이 곧 내 포토그램 작업의 실체인 것이다.” (『사진으로 생활하기』 중)

최 작가는 포토그램의 매력을 “단 한 장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전한다. 포토그램은 필름이 없기 때문에 한 장의 원본만 존재하는 것이 기존의 사진과 다른 점이라며 “그 한 장을 만드는 재미가 참 좋다”고 말했다.

물론 사진기를 사용하지 않으니 포토그램이 사진이라고 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최 작가는 인화지를 사용하니 사진기법이라고 답한다. 오히려 포토그램은 렌즈를 통해 찍은 보통의 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시각을 담은 ‘단 한 장의 사진’인 것이다.

*인화지: 사진원판으로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빛에 반응하는 화학제를 바른 종이


양준영 기자 stella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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