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보존전문가의 세계

고서에서 뽑아낸 오래된 종이를 찬 물에 씻어 먹물을 뺀다. 그렇게 만들어진 백지에 물을 들이고 먼지를 입혀 다시 낡은 종이의 색을 낸다. 희미한 그림 위에 ‘회음수’를 뿌리자 보이지 않던 먹선이 떠오른다. 영화 『인사동 스캔들』에 나오는 마법 같은 동양화 복원 기법들이다. 영화 속 복원기술자의 손끝에서 400년 전의 그림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산산조각난 도자기가 매끄러운 모습을 되찾고, 녹슨 쇳조각에서는 반짝이는 칼날이 드러나고….’ 우리는 ‘문화재 복원’이라는 말에서 흔히 이같은 극적인 변화를 떠올린다. 그러나 소설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문화재 복원 기술들은 과장돼 있거나 심지어 허구인 경우도 있다.

실제 문화재 복원이 이뤄지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아래 보존과학실)을 찾았다. “그럼 한 바퀴 돌아보실까요?”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 박학수 보존전문가가 연구실을 차례차례 안내했다. 보존과학실 내부에는 금속, 서화, 석제, 토기·자기, 목제 등 문화재 재료에 따라 다양한 보존연구실이 분리돼 있다. 문화재의 손상정도와 재질을 분석하는 문화재분석실과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조성하는 환경조사실도 있다. 연구실마다 작업방식도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서화 보존연구실에 들어서자 작업대 위의 낡은 종이더미가 눈에 띄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종이에는 글씨와 낙관이 새겨져 있다. 글씨나 그림의 지워진 부분은 어떻게 복원하는지 질문하자 담당 연구원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토기·자기 보존연구실에서도 “전문적인 연구결과 원형이 확실하게 파악될 때에만 깨진 부분을 복원한다”고 설명했다.

석제 보존연구실의 작업대 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출토된 벽화가 놓여 있었다. 이 역시 벽화 내용에는 손을 대지 않고 파손된 주변부를 보강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산산이 부서진 불상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들어맞는 조각이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불상이 무너지지 않는 한 빈 공간을 채워 넣는 경우는 없어요.” 어떤 복원작업도 원형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을 되살리지는 않고 있었다.

박 보존전문가는 “복원은 기본적으로 연구와 지식의 전파가 목적”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가 아닌 ‘출토된 상태와 원형의 모습을 얼마나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가’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그는 “서화나 도자기 등이 감상을 목적으로 쓰일 경우에는 미적 감각을 살린 복원이 이뤄지기도 한다”며 “그러나 미적 가치보다는 연구 가치에 역점을 두고 복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일부러 색이나 질감을 원본과 조금 다르게 해 복원한 부분을 눈으로 분간할 수 있도록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문화재 복원은 보존전문가의 개인적인 재해석이나 재창작이 아니다. 복원의 한계는 어디까지나 원본의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선이다. 이렇게 잘 보존된 문화재는 때로 상상 너머의 효용성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박 보존전문가는 “옛날 옷에서 채취한 벌레를 통해 과거의 환경을 연구하는 일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를 수요·공급 그래프에 대입시키면, 그 가격은 무한대에 근접한다. 공급량이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의 수명을 극대화시키는 일, 보존전문가의 일을 단순히 ‘기술적인 수리’라는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다.

김서홍 기자 leh@yonsei.ac.kr

자료사진 『인사동 스캔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