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동안 사형수 교화에 힘쓴 양순자 상담소장

33년 전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2명의 자식을 부양하고, 시댁식구와 갈등을 겪으면서 삶에 대한 괴로움으로 가득찬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였으며 하루하루를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보냈다. 그녀의 인생은 막다른 길이었고, 뒤돌아 보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삶에 지쳐 모든 희망을 다 잃어버린 그녀가 마지막으로 택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사형수와의 면담’이었다. 완전한 절망을 보고나면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이 좀 더 나아보일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차라리 행복한 사람들을 보며 희망을 되찾으라며 만류했다.

처음 사형수를 만나고 양씨는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은 실질적인 속박과 제약이 없는데도 여지껏 희망 없이 살았지만, 사형수들은 모든 희망이 다 사라진 상황에서도 실날같은 희망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눈앞에 와 있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을 보며, 양씨는 자신이 품었던 죽음의 유혹에 대해 뼈속 깊게 반성하게 됐다. “높이 날아 보니까 그 벽 너머가 보이더라고.” 그리고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사형수들과 인생을 함께하게 됐다.

사형수 교화만 33년, 사형수의 친구 양순자씨

서울구치소와 안양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의 교화를 맡고있는 양순자씨는, 맨 처음 사형수를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당신이 나를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나는 당신에게 ‘배정된’ 상담사가 아니다. 당신이 만약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를 거부하고 다른 상담사를 요청할 수 있다. 너는 선택할 권리가 있다.”

곧 사형을 앞둔 사형수들은 언론, 간수들을 통해 이미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된 지 오래다. 이미 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사람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들에게 선택할 권리를 줌으로써 자신이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임을 되새겨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어 양씨는 “다행히 내친 사람은 없기 망정이지”라며 웃었다.

그녀가 하는 일은 ‘교화위원’이라는 명칭 그대로 ‘교화’다. 교화라는 단어의 뜻은 본래 ‘가르치고 이끌어서 바른길로 인도함’이다. 하지만 양씨에게 있어 교화란 조금 다른 뜻이다. “사형수들은 마치 그가 사형수가 되기 위해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들의 ‘불행’이라는 하나의 길에 있어 마지막 주자다. 살아온 인생이 어찌됐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인 내가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도록, 세상에는 이런 행복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다.” 양씨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이들이 그 곳에서라도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형수들은 대부분 불우한 삶을 살아온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형선고를 받고나면 배우자가 곁을 떠나고, 자식들 역시 등지며, 주위 사람들의 경멸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들은 사형을 받음과 동시에 모든 연고가 사라지면서 이 세상의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종교인으로 구성된 교화위원을 통해 내세나 다음 생에 기대며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구치소를 포함한 여러 구치소의 교화위원은 과반수가 종교인들로 이뤄져있다.

하지만 양씨는 종교인 자격으로 사형수를 만나지 않는다. 사형수들에게 사후의 행복을 종교적으로 기대하게 하기 보다는, 남은 생을 한껏 열심히 살아 ‘행복하다’는 생각을 그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사형수를 만난다. 또한 양씨는 기독교 신자지만 그녀가 쓴 책의 서평에는 스님의 글이 먼저 올라와 있다. 이처럼 그녀의 철학은 종교를 초월한다. “그들이 지내온 불행한 삶의 마지막 주자가 바로 나다. 그래서 그 동안 아무리 불행했어도 마지막은 나와 지내며 행복함을 느끼고 세상을 뜨도록 하고 싶은게 내 소망이다.” 

인생의 이정표이고 싶다

평소에는 어떤 일을 하시냐는 질문에 양씨는 “보통은 상담을 하고 지내며, 대학이나 기업체, 군대에서 강의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사형수 외의 사람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양씨의 상담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녀가 상담하는 이들이 단순히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몸도 마음도 모두 불편한 이들을 직접 찾아가 상담해주고 있다. 그들에게 직접 찾아가 상담을 하며 그들의 고통을 분담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듯 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부터, 연애고민을 늘어놓는 대학생들, 탈영을 시도해 영창에 간 군인들까지 상담 층도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양씨의 목표는 “굳이 말하자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상황에 있어 ‘어른’의 말을 해 주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소 난해한 목표이자 개인적인 바람이 아닌 이타적인 목표였다. 그녀는 “경로석 4자리 차지하려는 어른은 있어도 진짜 어른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젊은 사람들에 있어, 어떤 것이 옳은 길인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출간한 양씨의 책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는 그녀의 이런한 바람을 실행에 옮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양씨는 책에서 대학생들에게 ‘우리 세대 때 모든 것을 바꿔야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들이 세상을 짊어질 큰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젊은 20대가 자살하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너희가 이 세상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현 40대 까지는 기성세대로서, 그들이 모두 물갈이가 될 그때 너희들이 세상을 멋지게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큰 일을 맡아야 할 너희들이 사소한 일로 왜 죽어야 하느냐.” 양씨의 말에서 장차 사회의 주 계층이 될 20대에 대한 간절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죽음에 대처하는 그녀의 자세

숱한 죽음을 본 양씨 자신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일까. ‘교화에 힘쓰겠다’, ‘어려운 사람들을 상담하겠다’ 등의 대답을 예상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매우 특별했다. 양씨는 “더도 말고 딱 5년 동안만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딸이 겨우 1년에 한 번 전화할 때는 너무 괘씸하고 서운했는데,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그 한번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 5년 동안 죽은 듯 살아보고 나면 내 죽음도 더 편하게 맞이할 수 있을거야, 그래서 죽음을 ‘절망으로 안고 가는 죽음’이 아닌 ‘받아들이면서 갈 수 있는 죽음’으로 생각하며 편안하게 세상을 뜨고 싶어.”

장기원 기자 iamhungry@yonsei.ac.kr
자료사진 열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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