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군대는 별개다?


대한민국 병역법이 바뀌었다. 오는 2011년부터 남성과 여성이 각각 12개월 씩 군복무를 하게 된단다. 이는 남자만 군에 복무하는 것이 남녀차별금지법 제 18조 1항에 위배되므로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나눠져야 한다는 병무청의 결정에 따른 개정이다. 이에 따라 1990년 이전에 태어난 만 20세 이상의 여성들은 근처 병무청에 가서 신검을 받아야 한다.

…라는 뉴스가 나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난 2007년 모 방송에서 군복무에 관한 거리인터뷰 중 부적절한 군대발언으로 '군삼녀'라 일컬어지며 비난을 받았던 한 여대생


대한민국에서 말 한마디만 잘못 꺼내도 격렬한 성별논쟁으로 불거지는 화제가 바로 ‘군대’다. 위의 가상기사처럼 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군대란 ‘나와는 상관없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군대문화를 저절로 이해하게 되는 여성들이 있으니,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군대에 빼앗긴 ‘곰신(고무신의 줄임말로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여성들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들이다. 대한민국에서 의무복무제가 시작된 이래 곰신은 항상 존재했을진데, 홀로 가슴앓이하며 외로움에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던 예전 곰신과는 달리 신세대 곰신들은 모여서 외로움을 공유한다. 애인을 ‘빼앗아 간’ 군대를 원망하며 함께 군대에 대해 공부도 하고 선물도 만들다 보면 기다리는 체감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돼 있는 곰신카페 ‘아름다운 기다림’(http://cafe.naver.com/komusincafe)은 회원수가 20만 명에 육박하고, 실명제 때문에 평균회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싸이월드에도 1만5천명의 회원을 보유한 곰신클럽 ‘아름다운 기다림(곰신&군화)’(아래 아기곰)(http://gomusin1.cyworld.com)이 존재한다.

‘꾸나’를 기다리는 ‘아기곰’의 ‘꽃신’

그 중 싸이월드에 개설돼 있는 아기곰에는 계급별 게시판, 선물 게시판, 면회 게시판 등 군대 관련 정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시판들이 개설돼있다. 클럽에서 곰신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도 있다. 군 복무 중인 애인을 일컫는 군화(꾸나), 기다리는 여자친구는 고무신(곰신), 혹은 꽃신이다. 남자친구가 군대 가면 꽃신을 ‘신는’ 것이고, 기다리던 남자친구의 제대일이 곰신을 ‘졸업’하는 날이다. 클럽에는 “우리 꾸나 100일 휴가 나왔어요”, “병장계급장 단 꾸나의 모습이 얼마나 늠름하던지. 지금까지 기다린 나는 해바라기 꽃신”, “기다리기 너무 힘들어요. 외롭고 힘들 때 옆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요” 등 군대에 남자친구를 보낸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매일 업데이트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카페 ‘아름다운 기다림’(http://cafe.naver.com/komusincafe)

아기곰의 클럽장 조아라(26)씨는 지난 2003년 남자친구가 입대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다가 싸이월드에는 군대관련 클럽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직접 클럽을 만들었다. 처음에 소모임 수준이었던 클럽은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유명세를 타 회원수 1만 5천명의 대형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조씨는 “오래 전 곰신을 졸업했고 현재 직장인이지만, 클럽에 대한 애착 때문에 아직도 클럽장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실컷 기다렸더니 결국…이걸 기다려, 말어?

사정이야 많겠지만 중간에 여자가 변심해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경우 뿐 아니라, 제대 후 2년을 기다린 애인에게 남자 쪽에서 이별을 고하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러니 ‘기다림’에 대해 남녀 각자가 갖는 위기의식이 생길 수밖에. 남자들은 갇혀있는 자기와 달리 세상에 풀어져 있는 여자 친구가 혹시나 딴 맘 품지나 않을지 걱정, 여자들은 ‘실컷 기다려 봤자 제대하면 배신 한다더라’며 주변에서 우려하는 소리 때문에 이렇게 기다리는 게 맞는 건지 걱정인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 해 9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한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이화여대 김지은(서양화‧07)씨는 “특별히 기다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주 소통할 수 없다는 상황이 다를 뿐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레 기다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녀는 “가끔씩 말투나 사고방식이 변한 것을 느끼지만, 군대도 하나의 사회인만큼 군인이라는 신분의 남자친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친구들의 소개로 곰신클럽에 가입돼 있다고 한다.

한편 서로에게 불필요한 책임을 전가해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남자친구가 레바논으로 파병되면서 연락이 거의 끊겼다는 손아무개(23)씨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도 괜히 얽매이지 말고 소개팅도, 미팅도 하면서 자유롭게 지내라고 말했다고. 제대했을 때 그 마음 그대로면 다시 만나는 게 부담도 되지 않고 혹여 남자의 마음이 떠나더라도 깨끗하게 이별할 수 있다는 게 그들 커플의 지론이다. 이에 아기곰 클럽장 조씨 역시 “서로에 대한 ‘보상심리’를 버려야 한다”며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이 걱정돼서 못 기다린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정답은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난 군대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굳이 맨 앞에 언급한 가상의 뉴스가 현실화 되지 않더라도, 이 땅에 군복무제도가 존재하는 한 군대는 화성에서 온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군대를 직접 가든, 기다리는 곰신이 되든, 그도 아니면 남자형제나 주변 친구들이 군대를 가든 금성의 여자 역시 모두 군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에서 비롯된 소모적인 언쟁보다는 서로의 입장과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두 행성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혀주는 건 아닐지….


송은지 기자 lifeholic@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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