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빅이슈」의 메이데이 참여기

흔히 겪는 상황 하나를 가정해보자. 허름한 행색의 노인이 다가온다. 그가 내미는 것은 껌 아니면 사탕. 가격은 시중가의 2배 이상이다. 이걸 살까 말까. 물론 당신의 고민에 상품을 ‘구매’한다는 생각은 없다. 노인은 구걸을 할뿐이며 그의 껌이나 사탕을 사는 것은 자선행위다. 짐짓 엄숙하게 고민하는 당신을 두고, 노인은 자리를 뜰지도 모른다. 그럼 고민은 끝난다.

지난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되고 현재 28개국에서 발행 중인 주간잡지 「빅이슈」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구걸이 아니라 일하는 중(Working, Not Begging.)”이라는 슬로건은 「빅이슈」의 지향점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노숙인이 당당한 노동행위로서 잡지를 팔고, 그로써 자립의 발판을 삼을 수 있는 세상. 이를 위해 「빅이슈」는 등록카드를 발급받은 노숙인들에게만 판매권한을 주고 그 판매금의 반 이상은 노숙인들에게 넘긴다. 이 잡지의 한국판 준비 모임(아래 빅이슈 모임)은 4월 6일 법인 등록을 마치고 10일에는 사업자등록증과 출판등록을 발급받아 사회적 기업으로 한발을 내딛었다. 창간호 발행은 오는 8월 이후로 잡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지영

빅이슈 모임은 4년 동안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해온 최준영 빅이슈코리아 대표가 지난 2008년 10월 만든 인터넷 카페로 시작했다. 이 모임이 준비할 일은 아직 많다. 상근 자원활동가인 우리대학교 학생 은영(경영?07휴학)씨는 “아직 태동기고, 법적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법은 노숙인의 거리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잡지의 성격 역시 미정이다. 빅이슈 모임은 한국판 「빅이슈」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5월 1일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메이데이: “당신에게 일은 무엇입니까?”’ 행사(아래 메이데이 행사)에서 홍보를 겸한 여론조사를 했다.

메이데이 행사는 ‘(재)함께일하는재단’이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 ‘희망청’의 주최로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올해 처음 열렸다. 이 행사는 기존 노동절 집회 구호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20대의 관점에서 ‘일’의 개념을 새롭게 생각해보는 것을 취지로 한다. 상근 자원활동가 안병훈씨는 “자원활동가 중 메이데이 행사에 참여하는 분이 있었다”며 “젊은이들이 빅이슈 모임에서 노숙인들이 자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무상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 행사의 취지에 맞아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메이데이 행사에서 「빅이슈」 부스를 구경하던 이교연(28)씨는 “아직 발행전이라 어떤 내용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특이하다”고 말했다. 김정순(43)씨는 “취지는 좋지만 지금 잡지 시장이 안 좋은데 이익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빅이슈」는 노숙인을 돕기 위한 잡지지만, 목적을 위해선 대중의 구매를 통한 수익 창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콘텐츠가 관건이 된다. 영국판과 일본판 「빅이슈」는 브래드 피트, 니콜 키드만 등의 유명배우들과 콜드플레이, 오아시스 같은 유명밴드들이 나선 표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주류 대중문화를 주로 다룬다. 일본판「빅이슈」에 칼럼을 연재하는 사회운동가 야마미아 카린씨는 “사회문제를 호소할 때 문화적 방법이 확산력 있다”고 말했다. 야마미아 카린씨는 우익밴드 ‘유신적성숙’에서 보컬로 활동하다 전향해 현재 프레카리아트* 운동을 하고 있으며, 메이데이 행사 포럼에 패널로 참여했다.

한국판 「빅이슈」 역시 이런 성격을 띠게 될까. 자원활동가 김벌(35)씨는 “잡지를 사보는 사람은 대중들이니까 무겁지 않게 대중문화와 가십을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빅이슈」에서 노숙인들이 단지 판매만을 도맡는 것은 아니다. 일본판에서는 음식 레시피를 곁들인 노숙인들의 인생 상담을 매호 연재해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한국판 「빅이슈」는 이를 모델로 노숙인들이 잡지에 기고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할 예정이다. 자원활동가 이준호씨는 “대안적인 삶과 노숙인 분들의 이야기를 싣겠다는 공감대가 모임 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메이데이 행사장 뒤편의 술집에서는 한 노숙인이 술집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다. 술집주인이 영업방해라며 술집 앞에 누워있는 노숙인에게 비키라고 하자, 노숙인은 “민주주의니까 내가 여기 앉아있는 건 자유”라며 완강히 버틴 것이다. 그의 행동이 정말 영업을 방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노숙인의 이미지가 불결과 두려움으로 굳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메이데이 행사에 관심을 보이던 행인들도 노숙인에게는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빅이슈 모임 자원활동가 ‘봄봄봄’씨의 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숙자는 사회적 문제요소가 아니라 그 피해자죠. 누구나 노숙자는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부랑자, 쓰레기라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없어요.”

*프레카리아트(Precatriat): 불안정성을 뜻하는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쳐서 만든 조어로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뜻한다.

백지원 기자 kaleidoscop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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