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발전에 급급해 정작 시장 사람들의 목소리는 뒷전

우리대학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재래식 시장인 ‘다주상가’가 지난 2006년 재개발 계획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신촌 근처의 또 하나의 시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고 한다. 바로 우리나라 2번째의 규모를 자랑하는 ‘모래내 시장’이다.

쇠락하는 모래내 시장

모래내 시장은 70~80년대 어려웠던 한국 서민들과 함께한 삶의 터전이었다. 한 때는 시장의 명성을 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도 찾아올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남가좌동 주민 손헌순(60)씨는 “예전에는 파리채 하나 사려고 시장에 오기도 했다”며 “약속을 해도 거의 시장 앞에서 보자고 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모래내 시장은 지역주민들에게 단순히 상품 구매 장소가 아닌 생활 공간의 한 부분이었다.

아직도 모래내 시장은 서울시내의 다른 시장에 비해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정작 물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과일상점을 운영하는 한 상점주인은 “내가 처음 이 시장에 들어설 때는 상인들이 모래내 시장에서 점포를 못 내 안달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파리만 날린다”고 말했다.

모래내 시장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현재 모래내 시장의 환경은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다. 시장 바로 옆에서는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고 자동차의 통행이 많은 내부순환도로와도 바로 연결돼 있다. 이로 인해 매연과 먼지에 쉽게 노출돼 농산품의 신선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지난 2008년 시장 내의 한 상가에 불이 나 여러 명의 사상자와 더불어 건물들이 훼손되기도 했다. 그때 불에 그슬린 건물은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돼있어 시장을 흉물스럽게 보이게 하고 있다. 또한 지난 1월 모래내 시장 내의 ‘월드축산’ 점포가 젖소 고기를 한우로 속여 팔다가 적발됐다. 이 사건은 대형 마트에 비해 ‘인정 넘치고 서로간의 신뢰가 돈독했던’ 재래시장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줬다. 

모래내 시장 어귀에서 철거가 확정된 상가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구청의 완강한 재개발 계획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서대문구는 지난 2006년 하반기부터 ‘모래내 시장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시장 상인들은 크게 반발했으나 서대문구를 새로운 경제의 중심지로 삼으려는 구청의 입장은 완강했다. 현동훈 서대문구청장은 지난 6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가재울 뉴타운과 모래내시장의 개발을 연계해, 서대문구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대문구의 계획은 북가좌동에 위치한 ‘가재울 뉴타운 1구역’과 오는 6월 준공을 앞둔 남가좌동 ‘가재울 뉴타운 2구역’에 아파트를 세워 새로운 주거단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현 모래내시장 부근도 대규모의 주상복합단지로 대체할 예정이다.

남가좌동, 북아현동, 홍제동 부근은 시장과 낙후된 주택지역 때문에 그동안 경제발전이 더뎠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역의 발전을 막는 요인으로 이 둘을 지적해 왔으며 때문에 재개발 역시 어느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남가좌동 공인중개사무소의 김아무개씨는 “3~4년 전부터 이미 재개발 소식을 들은 투자자들이 많이 부동산을 찾곤 했다”고 말했다.

갈 곳 없는 상인들

모래내 시장 내 상가 쪽은 한 눈에 봐도 절반 정도의 점포가 이미 이주한 상태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 가량의 점포에 상인들이 남아 있고, 재래시장 쪽은 아직도 많은 상인들로 가득차 있다.

모래내 시장 안쪽의 상가들은 대부분 상점이 본인 소유인 경우가 많아 보상금을 어느 정도 받고 시장을 떠났다. 하지만 재래시장 쪽은 점포에 세를 얻어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기 때문에 충분한 보상금을 받기 어렵다. 서대문구청 측에 의하면 법적으로 세입자가 재개발로 인해 이주를 해야 할 경우에 향후 4개월 정도의 수입을 지원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세금을 면하기 위해 세입신고를 하지 않은 상인들에겐 이마저도 그림의 떡이다.

서대문구청의 한 관계자는 “모래내 시장 상인 중 일부는 보상금을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기도 한다”며 “이러한 사항이 원만히 해결되지 못해 아직까지 개발이 크게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인 측 의견은 다르다. 모래내시장 내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김희림(59)씨는 “더도 말고 다른 상가 구할 여건만 마련해 달라는 데 그것이 터무니없는 요구인가”며 한탄했다.

설상가상으로 상인 중 대부분은 노인이기 때문에 새로운 곳을 얻어 새 점포를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갈 곳 없는 상인들은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며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점포를 지키고 있다.

“15년 동안 얼마나 정이 들었는데, 이제 죽을 때가 된거지”라고 한탄하는 이일구(71)씨의 답답한 표정에서 현재 모래내 시장민들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지역경제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 지역을 삶의 근간으로 삼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또한 지역민의 생활과 역사를 공유해 온 시장의 상징적인 의미에 대한 숙고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장기원 기자 iamhungry@yonsei.ac.kr
사진 구민정 기자 so_coo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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