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아트와 몽

한 사람이 싸구려 비닐우산을 쓰고 앉아있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녹두장군 노래’를 부르며 그 주변을 빙빙 돈다. 갑자기 촛불로 비닐을 태우고 초를 우산에 꽂는다. 강국진, 김영자, 정강자 등 10명이 모여 행한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의 한 장면이다. 1967년 겨울, ‘퍼포먼스 아트’의 시초격인 ‘해프닝’이 이 땅에 처음 등장한 순간이다.

해프닝은 실험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와 몸짓이라는 하드웨어를 결합한 전에 없던 형태의 예술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한국 최초의 해프닝은 단지 해프닝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60년대 말의 해프닝은 70~80년대 미술계의 행위미술로 이어졌다. 행위미술은 90년대를 거치며 장르의 제한에서 탈피해 독립적인 행위예술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제 행위예술은 ‘퍼포먼스 아트’로 재정립되고 있다. 기존의 ‘행위’라는 단어로는 아우를 수 없었던 ‘타 매체와의 혼합’이라는 의미까지 포괄하는 용어다.

퍼포먼스 아트는 몇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다. 퍼포먼스 아트는 다분히 탈장르적이다. 또한 작가들마다 이에 대한 인식과 정의가 다르다. 전위(前衛), 즉흥, 사회비판 등은 대부분의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공유될 수 있는 성격일지 몰라도 모든 퍼포먼스를 관통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성능경 작가는 『한국 퍼포먼스 아트 40년 40인』에서 ‘계속해서 나올 퍼포먼스의 정의 종합+α’라고 퍼포먼스 아트를 정의했다.

사람들은 흔히 ‘행위예술’라는 말을 들으면 ‘몸을 이용한 예술’을 떠올린다. 머리카락을 붓처럼 이용해 글씨를 쓰는 모습이며, 온 몸에 물감을 뒤집어쓰고 종이 위를 뒹구는 모습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행위예술의 이미지다. 하지만 퍼포먼스 작가들은 대중이 퍼포먼스 아트를 이렇게 정형화시켜 인식하는 것에 불만을 품기도 한다. 퍼포먼스 아트의 무게중심은 도구로 쓰이는 몸이 아니라 근간을 이루는 실험정신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퍼포먼스 아트와 퍼포밍 아트*를 구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퍼포먼스 작가는 관객들이 하나의 정답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까지도 퍼포먼스의 일부가 되고 오히려 즉흥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김은미 작가의 작업 중에 가시달린 푸른 장미를 가슴에 두르고 사람들과 포옹하는 퍼포먼스가 있다. 한국실험예술정신(Korean Performance Art Spirit, KoPAS) 이정희 기획실장은 “안길 때 느끼는 아픔, 그리고 먼저 다가와 안거나 안기길 거부하고 달아나는 다양한 태도 모두 예술 행위의 일부”라고 말했다.

‘몸’과 ‘몸짓’을 통해 표현하는 퍼포먼스 아트는 언어 없이도 완성되기 때문에 문화권을 초월한다. 지난 한국실험예술제에서도 많은 외국인 관객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도 한국 퍼포먼스 작가들의 작업을 즐겁게 지켜봤다. 퍼포먼스 아트를 제대로 즐기는 데 배경지식이나 전문가의 도움은 필요치 않다. 필요한 것은 오직 약간의 ‘관심’과 그에 따르는 ‘익숙함’뿐이다.

*퍼포밍 아트 : 행위를 중심으로 연기되는 예술. 무용, 연극, 노래 등을 말한다.

김서홍 기자 leh@yonsei.ac.kr
사진 박선종 기자 ganzina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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