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교 실습실을 점검한다 - 건축공학과 우유처리장 설계실

제1공학관 건물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건축공학과 학생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음 설계수업 장소는 기숙사 근처에 있는 우유처리장. 수업 시작은 3시부터인데, 우유처리장까지 걸어가자니 30분은 족히 걸릴테고 셔틀버스를 탄다 해도 기다리는 시간이 만만찮다. 결국 몇몇 학생들이 모여 택시를 탄다. 이는 건축공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유처리장 속 열악한 실습실

건축공학과 건축설계과정 3학년 이상 학생들은 우유처리장에서 설계수업을 듣는다. 우유처리장이 처음부터 설계 실습실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원래는 현재 건축학과 2학년이 설계수업을 듣는 제1공학관 5층 설계실에서 모든 설계 수업이 이뤄졌다.

이후 설계수업 분반이 늘어나면서 마땅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우유처리장을 설계 실습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은 북문 근처에 위치해 있어 가는 길도 멀고, 셔틀버스 정류장으로도 지정돼있지 않다. 거리만 먼 게 아니다. 설계실 내부 시설도 매우 열악하다. 거의 매 시간마다 발표수업이 진행되지만 빔프로젝터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때문에 학생들은 건축공학과 사무실에서 무거운 빔프로젝터를 빌려 우유처리장까지 들고 이동해야 한다. 설계 수업에 꼭 필요한 플로터*가 설치된 것도 지난 2008년 2학기부터다.
건축공학과 사무실 관계자는 “학교에서 책상, 의자 외엔 거의 마련해 준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곳에서는 교내 무선랜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때문에 학생들이 따로 와이브로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이마저도 연결이 원활하지 않다.

그나마 5학년 학생들은 사정이 낫다. 지난 2008년부터 우유처리장 맞은편에 지어진 대창고 2층을 설계실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은 비교적 양호하지만 제1공학관 설계실에 비하면 부족하다.

이에 시그에이건축 신춘규 겸임교수(공과대·건축공학과)는 “우유처리장 실습실 이용이 여러 가지로 불편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설계실에서 작업하라고 권장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우유처리장 설계실습실.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 쉽게 더러워진다.

두 배로 힘든 밤샘 작업

우유처리장에서 진행되는 설계수업은 밤 9시에 끝난다. 수업이 끝나도 다음 수업을 준비하다 보면 밤샘 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외진 곳에 위치한 우유처리장은 밤샘 작업을 할 환경이 되지 못한다. 건물 주변에는 편의시설이 없어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학생들은 생활협동조합(아래 생협)에 자판기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협은 수익성과 관리 문제를 들어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유처리장이 워낙 멀리 떨어져있어 관리가 어렵고, 자판기 이용자가 건축공학과 학생으로 한정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건축공학과 학생회장 최호준(건축·03)씨는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겠다고도 했지만 운영비 문제도 있다며 자판기 설치를 허용해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밤샘 작업을 할 경우 학생들은 연세우유 사무실 옆에 있는 화장실을 빌려 써야 한다. 이 역시 학생 수에 비해 부족하며 관리 상태도 좋지 않다.              

나가기 싫으면 그냥 써라?

학생들은 학과 사무실 측에 설계실에 대한 불편사항을 여러 번 건의했지만 실제로 개선되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여기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실제로 학교 측은 우유처리장 건물을 건축공학과가 계속 사용하도록 허락해준 적이 없다. 때문에 시설과 관련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청소를 비롯한 모든 관리도 학생들에게 맡겨져 있는 실정이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냉·난방기구를 들여놓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하성민(건축·07)씨는 “학교에서 우유처리장 설계실을 관리해주지 않아 쉽게 지저분해진다”며 “날씨가 추워도 온풍기조차 마음대로 틀 수 없다”고 불만을 표했다. 반면 제1공학관 설계실의 경우 청소 등 모든 관리를 학교에서 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기획실 관계자는 “우유처리장 건물은 연구공간으로 쓰였는데, 대·내외적인 평가 때문에 건축공학과에 한시적으로 대여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평가가 끝난 후 공간을 반납하기로 했지만 건축공학과에서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건축공학과 역시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건축공학과 사무실에서는 “설계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첨단공학관 건설 등 불확실한 계획에 기대를 걸 뿐”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우유처리장의 2층 일부만 설계실로 사용하고 있어 공간 부족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우유처리장 시설을 ‘빌려’ 쓰고 있는 건축공학과 학생들은 현재 우유처리장 설계실이 아무리 열악해도 이곳이 아니면 실습 수업을 할 공간이 없다. 오늘도 머나먼 우유처리장 실습실에서 힘든 밤을 보내는 건축공학과 학생들. 학교 측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플로터 : 설계 도면을 인쇄하는 프린터

황이랑 기자 oopshucks@yonsei.ac.kr

사진 추유진 기자 babyazaz@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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