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달 표면의 명암 경계선이 반듯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 관측 결과를 통해 달 표면에 산과 계곡이 존재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달 표면의 진실을 알아내는 데 망원경 못지않게 기여한 공로한 것이 있으니 바로 스케치 기법이다. 갈릴레이는 스케치 수업시간에 원근법과 명암법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달 표면의 명암 경계선만 보고도 그 실제 모습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술과 과학은 흔히 논리와 직관이라는 단어처럼 대립되는 분야로 생각된다. 하지만 갈릴레이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두 분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책 『예술, 과학과 만나다』는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예술과 과학이 실질적으로는 서로 공생하면서도 의식적으로는 갈등해 왔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지적한다. 특히 예술적 상상력의 본질을 △시각화 과정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관련성 모색 △유사한 것들 사이의 차이점 발견 △새로운 각도에서 일상적 소재 평가로 정리하면서 이러한 점들이 과학적 상상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 따르면 18세기까지 이성과 직관은 과학자와 예술가 모두에게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돼 왔다. 즉, 과학과 예술이 상이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19세기에 와서야 확립된 명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과학을 가리켜 ‘개념을 가지고 자유롭게 노는 것’이라 정의한 점이나,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 피카소가 그림을 가리켜 ‘논리적 순서를 가진 연구’로 표현한 것은 이 명제의 오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과학이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과정이고 예술은 인간의 심성을 바탕으로 ‘창작’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예컨대 언뜻 보면 자유분장해 보이는 피카소의 작품들도 사실은 구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 이다. 이처럼 예술 역시 일종의 논리적 체계를 바탕으로 한 창작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것과 더불어 실제적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대표적인 것이 제임스 맥칼리스터가 주장한 ‘미적귀납 이론’이다. 미적 귀납 이론은 성공적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한 이론일수록 그 미적 특성이 높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즉, 탐구 결과에서 나타난 미적 특성의 정도가 경쟁하는 가설 중에 더 타당한 것을 선택하는 지침이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진리일 수밖에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말은 미적 귀납이론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최근 과학자들은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과학 잡지 ‘피직스 월드’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실험을 선정하여 개제한다. 사이아트(Sci-art) 역시 과학 분야에서 발생한 미적 가치에 주목하는 대표적 장르다. 그 중에서도 과학사진 분야는 객관성, 실용성과 더불어 미적 아름다움을 갖춰 주목받고 있다. 소리와 공기 움직임의 형상을 가시화한 ‘슐리렌 포토그래피’나 힘이 가해질 때 발생하는 압력의 방향을 담은 ‘광탄성 사진’이 여기 속한다.

예술의 정신은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고 인식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한 단어가 수천, 수만 가지의 의미로 파생되는 것도 이런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의 과학은 절대적 진리를 갈구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불확정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해가고 있다. 과학과 예술은 양자 간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그 내부적 특성에서도 서로 근접해가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탄생시기부터 함께해 왔던 예술과 과학. 이 둘의 ‘사이’ 메우기는 이제 시작이다.

김규민 기자 memyself_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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