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드라마는 보지 않지만 『꽃보다 남자』는 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그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판타지에 빠져 현실을 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류 부잣집 도련님 4명이 등장하고 그 중 2명이 어느 서민 여학생을 좋아하는 내용의 『꽃보다 남자』는 ‘하이 판타지 로망스’라는 기획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드라마다. 과연 그럴까?


하이 판타지와 로우 판타지
‘하이 판타지’라는 장르는 판타지의 세부장르다. 엘프, 드워프, 마법사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초자연적 존재나 악에 맞서는 이야기가 전형적인 ‘하이 판타지’다. 『꽃보다 남자』에는 마법사도, 엘프도 존재하지 않는다. 초자연적 존재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하이 판타지’라 불리기에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한편, 판타지 소설의 대표격인『해리포터』는 마법사가 등장하고 악에 맞서고 있지만 현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이 판타지’의 반대 개념인 ‘로우 판타지’에 속한다.

‘로우 판타지’는 ‘하이 판타지’보다 허구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금 더 대중적인인기를 끌게 된다. 『해리포터』의 경우 현실과 비슷한 시간, 공간배경 등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장치해 ‘비현실성’을 포기하고 인기를 얻었다.

‘스파이더맨’으로 대표되는 ‘서민적 영웅’이 히트한 이후 미국 드라마(혹은 영화)는 현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영웅물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드라마『히어로즈』의 여주인공 클레어는 미국 여학생의 전형적인 모델이라는 점 덕분에 인기가 많다. 현실적인 인물에 ‘죽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인 요소와 ‘치어리더’라는 동경의 요소가 부합됐기 때문이다.


판타지의 본질 ; 현실에서 말하기 힘든 마음의 욕구
『도쿄에서 판타지를 읽다』에서 저자 히카와 레이코는 판타지를 “예화와 같은 것”이라 표현하며 “말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현실 속에서 표현해야 할 언어를 찾지 못할 때, 겉으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의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동시에 그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통해 뜻한 바를 드러낸 것과 같다”는 예를 들고 있다. 단순히 허황된 배경 묘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하고자 하는 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정의대로라면 스스로를 판타지라고 칭했던 드라마보다는 다른 드라마를 판타지답다고 볼 수 있다. 레이코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판타지 드라마는 KBS에서 방영된 『얼렁뚱땅 흥신소』다. 『얼렁뚱땅 흥신소』는 현대극이면서도 고종과 관련한 야사에서 출발해, 숨겨진 황금을 찾아나서는 ‘황금사냥’이 주제다. ‘황금사냥’의 단서가 되는 ‘초현실적 역사 배경’과 이를 믿는 인물 등 판타지를 입고 있지만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친근하고 일상적인 꿈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 지난 2008년 1월부터 3월까지 KBS에서 방영된 『쾌도 홍길동』 사진 출처 : KBS 공식 사이트(http://www.kbs.co.kr)

『얼렁뚱땅 흥신소』가 현실과 흡사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면, 같은 방송사에서 방송된 『쾌도 홍길동』은 ‘우리나라 최초 코믹 사극’을 표방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쾌도 홍길동』의 배경은 조선시대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초현실적 판타지 요소를 지니고 있었지만 본 내용에서는 현실을 비꼬는 요소를 담고 있다.


한국 판타지 드라마의 한계
『꽃보다 남자』에서 설정된 판타지는 화려한 설정 이면에 다른 할 말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화려한 설정’을 보여주는, 오락성에 그 목적이 치중돼 있다. 시청자에게 주어진 몫은 주인공들의 화려한 배경을 보고 동경하는 것 뿐이다.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배경만이 판타지의 전부는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트렌디 드라마가 갖는 한계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현실적 오락성’이 한류를 일으킨 근원이라고 분석하는 견해도 있다. 『한류, 한국과 일본의 드라마 전쟁』에서 저자 박장순은 한류를 이끈 한국 드라마의 특징에 대해 “현실사회에서 실재 가능한 내용을 재현하는 듯 하면서도 초현실적인 내용을 교묘하게 잘 조화시켰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비교 대상이 된 일본의 경우는 초현실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인 내용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많다.

일본 드라마는 판타지의 형태를 취할 때도 현실을 담으려 애쓴다. 『고쿠센』은 ‘야쿠자 집안 외손녀 담임선생님’과 그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는 ‘문제아 반’의 이야기로,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든 ‘판타지적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러나 매 에피소드마다 현실에 대한 독소를 내뱉는다.

『너는 펫』도 마찬가지다. ‘골드 미스’인 여주인공 집으로 미소년이 들어오고, 그 미소년 역시 재능이 있지만 여주인공의 펫으로 생활한다. 현실성이 없는 배경이었지만, 드라마를 통해 현대 여성이 ‘사람’보다 ‘펫’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꼬집는다.

일본 드라마가 판타지적 요소를 갖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1990년대 이후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드라마 밖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현실’을 ‘비현실적’ 판타지 요소 안에 담아내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판타지 드라마에는 현실과 판타지가 공존한다. 『고쿠센』과 같이 비현실 속에 있으면서도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더 크게 내는 ‘현실적인’ 드라마가 있는가하면, 『꽃보다 남자』처럼 비현실 속에서 ‘비현실’적인이야기로 시청자의 대리만족을 돕는 드라마도 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상충하기 때문에 ‘현실’과 ‘비현실’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판타지 드라마를 선택할지는 당신의 몫이다.

 

이슬기 기자 hesp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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