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안대학 세 곳을 찾다


■ 내부 어려움 딛고 생태적 자활 모색하는 온배움터(구 녹색대학)

자료사진 체화당

지난 2003년 3월, 한국 최초의 대안대학을 표방한 ‘녹색대학’이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서 출범했다. 내세웠던 슬로건은 ‘문명 치료사 양성’. 사람과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개발 문명을 진단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에 각지에서 생명운동에 뜻을 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창립 당시 장회익 명예교수(서울대·물리학)가 총장을 맡았고, 김지하 시인 등 시민환경단체 인사 33명이 발기인이 됐다. 단체 ‘녹지사(녹색교육을 지원하는 사람들)’는 폐교된 백전중학교 부지를 매입하는 등 후원금을 마련해 줬다. 비인가학교인데다 첩첩산중 시골이라는 어려움에도 불구, 학생들도 30여명 찾아왔다. 녹색대학에서 각각 선생님, 학생, 교직원을 뜻하는 ‘샘’, ‘물’, ‘여울’들이 모두 갖춰졌다.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했다. 그러나 화려한 시작과 달리 얼마 안 돼 한계점들이 드러났다.

“국내 최초의 대안대학이라는데 들떠서 너무 급하게 학교를 만들다 보니 (녹색대학을 만든 사람들에게) 학생들이 어떻게 살고, 공부하고,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없었던 거죠.” 현재 기초과정 교무 총괄을 맡은 유상균 교수의 말이다. 기숙사생활을 하는 학생들과 달리, 대부분의 교수들은 원거리에 거주하면서 수업이 있을 때만 가끔 녹색대학을 찾아와 학생들과 교수간의 위화감을 불러 일으켰다. 학교를 빨리 열기 위해 진 빚도 문제가 됐다. 한 학기만에 운영비가 모자라 파산수준까지 갔고 부지가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둘러싼 내부적 마찰이 일어났다. 녹색대학이 정말 ‘녹색’의 이념을 실현하고 있는지, 대학과 공동체 중 어떤 성격을 더 추구해야 할지에 대해 부산한 논란이 일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총장이었던 장교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2년 전에야 새로운 방향을 찾자는 움직임이 나왔다. 지난 2008년에는 이름도 녹색대학에서 ‘온배움터’로 바꿨다. 인가를 받지 않았는데 학부와 대학원 체제를 갖추고 ‘대학’이란 이름을 써 사람들에게 혼란을 준다는 민원이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됐다. 사립학교 법 위반으로 기소돼 공동대표 허병섭 목사가 법정에 서는 일이 생겼고 이 와중에 “대안을 추구하면서 대학이란 이름에 집착하다 보면 은연중에 일반대학처럼 사고하게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온배움터’는 대학을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개명과 함께 학제도 재정비했다. 학부, 대학원 과정을 기초과정 2년, 연구과정 2년으로 대체하고 커리큘럼을 다듬었다.

가장 큰 문제였던 재정적 어려움은 녹지사 후원금과 한 학기당 160만원인 등록금 외에 수익구조를 다변화시킴으로써 완화시킬 예정이다. 유씨는 “공모 사업이나 건실한 사업을 기획한 후 정부, 지자체, 기업에게 지원요청을 해 정당한 심사를 거쳐 돈을 지원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녹색학교에서 식품이나 다른 물건들을 생산, 가공해 판매하는 사업을 계획 중이다. 그러나 유씨는 이러한 변모가 녹색대학의 기치였던 ‘자급자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추구하는 자급자족은 이 안에서 먹고 닫힌 생활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만든 것들을 외부와 나누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죠. 문명의 전환을 위한 치료사가 되려면 결국 외부와의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할 테니까요.”

아직 온배움터에 어려움은 많다. 현재 온배움터의 학생은 기초과정생 6명, 연구과정생 6명에 불과하며, 상근교수는 유씨를 포함해 4명 뿐이다. 유씨는 “(교수들로서는) 현재 삶을 버리고 여기까지 와서 활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교수초빙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대학’으로서 인가를 받을 수 없다는데서 느끼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온배움터 사람들은 비인가라는 면에서 어려움만을 보기보다는 서로 힘을 모아 외부의 간섭 없이 일을 해볼 수 있다는 장점을 읽어내려 한다. 적은 학생들이지만 이 학생들만큼은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생각 아래, 대학가의 최대 화두인 취업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유씨는 “졸업생들이 생태적 일자리를 갖도록 새로운 일자리 발굴을 위해 노력한다”며 “사회적 기업들에 관심이 많고, 장기적으로는 온배움터가 농촌 공동체를 복원하는 마을 기반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포함하는 곳으로 꾸려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 지역 기반 공동체를 꿈꾸는 노마소이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


이대 후문에서 대신교회쪽으로 접어드는 골목에는 우리대학교 이신행 교수(사과대ㆍ정치이론 및 사상)가 자택을 기증해 만든 마을 카페 ‘체화당’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체화당이라는 문패 외에 두 개의 문패가 더 붙어 있다. ‘신촌민회’와  ‘노마소이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아래 풀뿌리 학교)’가 그것이다.

사실 체화당, 신촌민회, 풀뿌리학교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모두 ‘풀뿌리 지역 공동체의 조성’으로 같다. 다만 체화당은 지역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 수 있는 공간 조성에, 신촌민회는 신촌지역의 문제들을 주민들이 직접 논의하는 것에, 풀뿌리학교는 지역사회와 연계된 교육실시에 중점을 둔다. 마을카페, 마을민회, 마을학교는 이교수가 꿈꿨던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세 가지 구성요소들이다.

풀뿌리학교의 경우 획일적인 지식 전달이라는 기존 대학의 한계를 보완해  배우는 이 중심의 맞춤형 교육을 추구하기 때문에 대안대학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있기도 하다. 현재 풀뿌리학교에는 80여명의 교수들과 25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교수는 ‘가르칠이’, 학생은 ‘배울이’, 졸업생과 선배는 ‘형벗’으로 불린다. 풀뿌리학교의 수업은 기초과정인 ‘터닦기’ 과정에서는 토론 위주로, 배울이의 관심진로를 지역사회와 연결시키는 ‘길찾기’ 과정에서는 일명 1대1 방식인 ‘도제식 교육’으로 이뤄진다.

학생들의 구성은 대안고등학교 졸업생, 일반대학에 다니던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하다. 강의 배정에서부터 학생들의 요구가 반영돼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이번 학기에는 총 6과목이 개설됐으며 이번 주부터 강의가 진행된다. 현재 공동교장 중 한 명인 국제변호사 유영근씨는 “이번에는 미리 준비해놓은 강의 중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운영하는 식으로 학생의견을 반영했으나, 여성학 등 미처 마련되지 못한 강의에 대한 수요도 있어 다음 학기에 수업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풀뿌리학교가 신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일견 의아해 보이기도 한다. 풀뿌리학교는 서울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를 탈피해 지역사회를 살릴 수 있는 인재를 기르려 설립된 마을학교인 반면 신촌은 서울서도 가장 큰 번화가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씨와 함께 공동교장을 맡은 문화인류학과 김진욱 강사는 “행정적 문제 때문에 일단은 접근성이 좋은 이곳에서 시작을 했지만 신촌에서 학교를 계속 키워가는 것보다는 이 같은 작은 학교를 지역 곳곳에 만들고 해외에까지 뻗어나가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풀뿌리학교에서는 서울을 벗어나 넓은 지역을 체감할 수 있도록 ‘나배 토론공동체’등의 합숙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나의 역사를 찾는 대안적 인문학을 향한 평유역사학교


서강대 맞은편의 글마을 길에는 낮에는 비었다가도 목요일 저녁 8시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 1층에서 매주 ‘평유역사학교’가 열리기 때문이다. 평유역사학교는 지난 2007년 12월 운영위원인 이영남(42)씨 외 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하던 사람들 4명이 모여 함께 만든 대안교육 모임 ‘글마을 풀무간’에서 시작됐다.

지금의 장소는 지난 2008년 10월에 마련했다. 5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천장의 샹들리에와 벽 한 쪽 전면을 차지하는 책장이 풍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역사에 관한 논의가 대학 안에서만 진행되고, 대학에서 다루는 역사는 국가의 역사에만 한정돼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평유역사학교에서는 시민사회와 나의 역사를 탐구하는데 중점을 둔다.

지난 1월 14일부터 오는 4월 26일까지 진행되는 올해 1학기 커리큘럼에는 심리적 치유를 주는 수업이 주로 편성됐다. 운영위원 이씨는 “꼭 심리치유를 위해 이곳을 설립한 건 아니지만 인문학을 연구하고 자기 역사를 엮어 가려면 자신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방향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 중 3월 5일에는 김형경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주제로 수업이 진행됐다. 모인 사람은 모두 네 명이었다.

수업의 많은 시간은 참여한 사람들 간의 대화로 이뤄졌다. 강의를 도맡아 하는 이씨도 수평적인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경험담을 주고받았다. 수업 중에는 푸코와 프로이트 등 익숙한 학자들의 이름도 나왔지만, 이런 학자들의 이론도 대화과정에서 사람들의 심리 상황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수업에 참여한 최종영씨는 “남들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 내면을 털어놓고 편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며 “직장과 병행하려면 바쁘지만 좋아하고 필요로 해서 오는 거라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려 한다”고 말했다.

대안초등학교인 ‘별이학교’ 교사로 일하는 참여자 곽호종씨는 “교사생활을 하며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흙냄새나는 살가운 역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회적 요구나 지적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 외에 내 삶과 자아에 대해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평유역사학교는 주류 문명의 자본주의, 가부장주의, 국가주의적 성격에 저항하는 새로운 문명을 찾아가고자 세운 곳”이라며, 지금 열리는 형식의 대안배움터 외에 대안대학을 설립하고 대안마을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이씨는 특히 ‘소규모이면서도 인가를 받는 ’ 대안대학을 지향한다. 이씨는 “대학 안에서 대안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 있는 대학들은 학생들이 실용교육만을 쫓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이 특성화된 대안대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지원 기자 kareidoscope@yonsei.ac.kr

사진 박선종 기자 ganzinam@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