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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늘 있는 슬픔, 그 슬픔에 귀를 기울이다
  • 김규민 기자
  • 승인 2009.03.07 19:59
  • 호수 1606
  • 댓글 4

흔히 사람들은 ‘청춘’을 빛나는 시기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청춘들에게 청춘은 빛나기만 하는 시기는 아니다. 그러기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슬픔, 자신에 대한 고뇌의 무게가 너무 크다. 이런 청춘의 감정들을 녹여낸 시인 기형도. 그는 20대로 상징되는 ‘청춘’을 뒤로 하고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했다. 지난 7일 홍익대 근처에 위치한 ‘이리 카페’에서는 그의 2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 ‘기형도 시를 읽는 밤’이 열렸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카페는 기 시인과 함께했던 문우들, 후배 문인들, 그리고 그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로 가득 찼다. 음악평론가 성기완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그의 일생을 돌아보는 영상으로 시작됐다. 영상은 그의 유년 시절 경험이 녹아든 시 「안개」를 필두로 우리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밝게 웃는 사진까지 그의 일생을 차근히 되짚었다. 기 시인은 「대학시절」이라는 시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라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그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시기는 군부 정권하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여느 때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완전무결한 이데아를 추구했던 플라톤의 저서를 읽었다는 것은 그 당시 청춘들이 마주했던 모순적 상황을 보여준다. 시인 진은영씨는 “기형도 시인의 슬픔을 냉대했던 것에 아픔을 느낀다”며 “그가 우리 안에 늘 있는 슬픔을 다뤄주었기에 윤리적 절박함에 압사당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암울한 사회 현실 때문에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 당시, 청년기의 개인이 느낄 수 있는 감정에 주목했던 그의 시는 일종의 면죄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검은 잎의 입」이라는 시를 헌정한 함성호 시인은 “시는 나이가 들수록 늙고, 노련해지고, 단련되지만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으며 그 유치함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흔히 나이 든 시인의 원숙함을 높이 평가하지만 시에서 만큼은 20대의 청춘만이 느낄 수 있는 유치함의 감정이 도리어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사에는 기 시인의 문우 성석제씨, 이문재씨, 황인숙씨도 참여했다. 성석제 씨는 “5주기까지는 비통함이 커서 슬픔이 가슴에 꽉 찬 느낌이였다”며 “내 청춘을 장사지내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슬픔보다 즐거웠던 것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라며 감회를 밝혔다.

기형도 시는 흔히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으로 평가된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입 속의 검은 잎」, 「안개」, 「빈 집」 등에는 죽음과 불안, 그리고 허무의 이미지가 녹아있다. 「엄마 걱정」, 「바람의 집」과 같이 불우한 유년 시절의 기억을 담은 시들 속에서 역시 불행과 고독의 심상이 지배적이다. 그는 시 속에서 독특한 모티프*와 개성적인 문체를 사용해 자신만의 시를 구축했다. 시「안개」에 나타난 환상적 묘사는 후배 문인들의 작품에서 새로운 모티프가 됐다. 또 그는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시 「어느 푸른 저녁」 중)와 같이 콤마에 의한 분리, ‘나는 그때 수천의 마른 포도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놀라운 공중을 만났다(중략)…나와 죽음은 서로를 지배하는 각자의 꿈이 되었네’ (「포도밭 묘지1」중)에 나타난 이질적 문장의 배치, 도치와 동일한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시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구현해 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청춘’, 홍조의 청춘이 아니라 고뇌하고 불안해하고 불행한 청춘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기 시인과 학창 시절을 함께했던 문우들은 행사에서 “이제 글씨가 작아서 잘 안보인다”며 노안과 나잇살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여전히 20대에 머물러 있는 기 시인은 아직도 ‘행복한 난투극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리석었던 청춘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시 「가수는 입을 다무네」중)라고 노래한다. 기 시인은 우울한 시의 분위기와 달리 모임에서 노래를 즐겨 부를 정도로 발랄한 청년이었다. 1983년 윤동주 문학상 당선작인 「식목제」에서 시인은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라고 외친다. 삶과 청춘에 대한 강한 긍정, 그것은 평상시 시인의 모습이자 자신과 같이 청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모티프: 예술 작품을 표현하는 동기가 된 작가의 중심 사상.

글 김규민 기자 memyself@yonsei.ac.kr

사진 추유진 기자 babyazaz@yonsei.ac.kr

김규민 기자  memyself_i@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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