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환율에 교환학생 기회 주어져도 포기해

높은 학점 컷과 영어점수 제한으로 인해 1학년 때부터 준비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고 불리는 교환학생. 실제로 2008년도 가을학기 영어권 교환학생 지원자들의 평균 토플 점수는 300점 만점에 243점(CBT 기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금까지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2~3년 동안 꾸준히 성적을 유지해야만 겨우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교환학생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교환학생을 꿈꾸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성적만이 아니다. 바로 떨어질 줄 모르는 환율이다.

하루만에 한 달 생활비가 왔다갔다

2009년 봄 학기 우리대학교 교환학생 선정자 수는 196명이다. 지난 학기 선정자 수가 310명이었고 총 400명이 지원했던 것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학교 측에서는 추가모집까지 했지만 200명을 넘지 못했다. 이번 학기 교환학생 공석 수가 총 386명(학기 단위 포함)이나 될 정도로 빈자리가 많이 생긴 것을 보면 ‘기회만 주면 감사히 가겠다’던 교환학생은 이미 옛말이 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 2월 27일 기준으로 미국 달러화 환율은 무려 1534.00원(1달러 당 한화 금액)이었다. 1년 전인 2008년 2월 22일 기준 미국 달러화의 환율은 949.80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584.2원이나 상승한 것이다. 한 일간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환율로 인해 한 학기 교환학생 비용이 적게는 40만원 정도에서 크게는 150만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고려대 김건(24)씨는 “먼저 간 친구말만 듣고 교환학생을 준비했다가 선발 후 이야기와는 달리 불어난 금액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환전 차액 역시 환율상승과 함께 학생들을 두 번 울리는 요인이다. 한국에서 송금할 때는 1AUD 당 988.77원의 환율이 적용되지만, 현지에서 돈을 받을 때는 969.9의 환율로 AUD당 20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우리대학교 김아무개(행정·06)씨는 “호주 현지에 있을 당시 가족들이 100만원을 보냈다”며 “당시 환율이 910원이었기 때문에 1천98AUD를 받아야 하지만, 내 통장에 들어온 것은 단 1천AUD 뿐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송금차액으로 인해 한화로 약 10만원을 손해 본 것이다.

또한 시시각각 변하는 환율로 일명 유학생들의 ‘돈 빼는 시기 맞추기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배재대 이승용(정외·04)씨는 “500만원 가량 출금할 일이 있어 은행에 가는 도중 일이 생겨 은행에 들리지 못한 적이 있다”며 “바로 다음날 은행에 갔더니 전날 보다 25만원 가량을 적게 주더라”고 말했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큰 돈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씨는 “친구들끼리 언제 돈을 환전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보를 수시로 교환한다”며 이런 상황을 ‘전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워킹홀리데이, 우리가 몰랐던 것들

이런 현실에서 학생이 직접 돈을 벌며 연수가 가능한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제도가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등 4개국과 워킹홀리데이 협약을 맺고 있다. 협약을 맺은 국가끼리는 서로 워킹홀리데이 비자(아래 워킹비자) 발급이 가능하며 학생들이 외국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동시에 직업을 얻을 수 있다.

워킹비자는 대학 교환학생제도와는 달리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뉴질랜드 1천500명 △캐나다 2천10명 △일본 3천600명을 매년 모집하며, 노동력이 부족한 호주의 경우 인원 제한이 없다. 때문에 매년 1만명 이상의 학생들이 워킹비자를 발급받고 있다.

워킹비자가 처음 생긴 목적은 1년 동안 원하는 지역에서 체류에 필요한 자금을 벌며 여유롭게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이후, 어학연수 또는 학업을 위해 워킹비자를 이용하는 학생이 현저하게 늘어났다. 대사관에 따르면, 지난 2008년 4분기 우리나라 학생들의 워킹비자 신청이 20%나 증가했다고 한다. 현지에서 자신의 생활비를 벌어쓸 수 있어 환율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킹비자를 발급받을 경우 법적으로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 위험부담이 적다는 것도 대학생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명시는 돼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임금체불, 단순노동직 일자리, 그로 인한 학업능률 저하는 워킹홀리데이의 여러 장점을 무색케 만든다. 1년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한 인천대 진경미(영문·03)씨는 “1~2주일 임금이 체불되는 것은 다반사여서 결국 마지막 두 달 치의 임금은 받지 못했다”며 “이에 항의하다 보니 원래 목표로 했던 학업은 뒷전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체험한 고아무개씨는 “다양한 직업을 체험할 수 있다고 했지만 1년간 내가 한 것이라곤 빨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워킹비자를 통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단순 반복 직업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워킹비자를 취득할 시 학생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없고 현지 건강보험 대상자에서도 제외된다. 문제는 워킹비자를 발급받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런 사실들을 모른채 타지로 떠난다는 것이다.

돈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학생들

솟구치는 환율 때문에 전쟁을 치러야하고, 타지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안해야 하는데도 대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업포탈사이트 ‘커리어’가 지난 2008년 한국 기업의 인사담당자 2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90.9%가 구직자의 해외연수 경험을 포함한 취업 요건들이 채용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미 지난 2005년을 기점으로 어학연수 참가자는 10만명이 넘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거의 모든 구직자들이 어학연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변별력도 없다”는 말까지 할 정도다. “외국이름으로 된 학교의 졸업장, 수료증을 사랑하는 기업의 방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앞으로도 환율폭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환율 앞에서 진리가 주는 자유는 그 빛을 잃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원 기자 iamhung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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