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의 치열한 고민이 묻어나는 초기작을 들여다보다

우리는 미술가의 초기 작품이라 하면 흔히 습작을 떠올린다. 명작은 화가가 어느 정도 내공을 쌓고 난 뒤에야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왠지 미숙할 것만 같은 ‘처음’이 화가의 인생에 있어 불후의 명작을 낳기도 한다. 정제되지 않은 그들의 열정이 도리어 작품 안에서 보는 이를 사로잡는 것이다.

인상파 르누아르(1841~1919)는 후기작보다 초기작이 더 인정받는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밝은 햇빛이 매혹적으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그의 작품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소녀와 꽃, 누드를 화려하게 그린 그림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자신의 화풍에 안주하게 된 후기의 그림들이다.

르누아르의 후기작품 <앉아있는 누드>

1867년 그린 <바지유의 초상>은 그의 초기작으로 동료 화가였던 바지유가 골몰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그는 주로 풍부한 색채를 사용해 밝게 비치는 빛을 묘사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유독 회색빛의 색채를 썼다. 또한 모델이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등을 보이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그의 대표작들은 예쁜 여인이나 소녀가 미소를 띤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학부대학 이규현 강사는 작품의 이런 구성이 그 당시 화가가 가진 외로움, 고민 등을 응축해내려던 노력이라고 말한다. 이 강사는 “19세기말 격변의 시대 파리에서 함께 고민하고 예술을 한 동료에게 자기 세대의 보편적인 모습을 투영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르누아르, <바지유의 초상>

르누아르는 자신의 재능이 인정받기 시작하자 지나치게 장식적인 그림만을 그렸다.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그림에 풍부하게 담아내려했던 노력은 없어지고 기교만 부리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점점 상업성과 타성에 젖어 말 그대로 ‘예쁜 그림’ 이상을 창작하지 못했다.

입체파로 유명한 피카소(1881~1973)는 20세기 최고의 천재 예술가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이런 통념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큐비즘(1907~1914)* 이후의 작품들은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평가한다. 화가이자 미술 비평가인 도병훈 씨는 “5만여 점이라는 엄청난 양의 작품 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후기 작품은 그의 명성에 힘입은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한 동일제품의 대량 생산이었다”라고 지적한다.

피카소, <비극>

이와 달리, 피카소의 초기 양식인 청색시대(1903~1905)의 작품에서는 청년으로서 앞으로의 예술세계를 넓히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무명이었던 20대 초반의 피카소는 끼니를 때우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다. 그의 우울하고 비참했던 심정은 어두운 청색조의 그림으로 처절히 드러난다. 그림의 대상은 주로 유랑하는 서커스단, 불우한 노인 등을 다뤄 삶의 애환을 자신의 작품에 담았다.

이 시기 작품이 그렇듯 <비극> 역시 전반적으로 파란빛으로 표현되었다. 그림 전체에서는 적적한 바닷가 앞에서 웅크린 채 서있는 세 가족이 느꼈을 추위가 시리게 전해진다. 그는 움푹한 두 눈, 누더기 같은 옷, 바닷가에서 맨발로 서 있는 모습 등을 통해 이 가족이 짊어졌을 고난과 아픔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암울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관심을 느낄 수 있다.

피카소의 천재적인 재능이 청색시대 작품에서 잘 드러나지 않기에 당시의 작품은 눈길을 끌만한 것들이 아니다. 또한 르누아르의 초기작 역시 후기의 화사하고 예쁜 그림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초기작은 관습에서 벗어나 있으며, 자신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는다. 설렘과 함께 걱정도 느끼게 되는 새 학기가 시작된 이즈음, 이들의 초기작을 찾아 감상해보는 건 어떨지. 두려움 없었던 그들의 새로운 시도에 신선한 감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큐비즘: 입체주의. 다양한 시점에서 보는 형태를 한 화폭에 표현하는 화풍.

양준영 기자 stella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