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퍼스트 플레이 페스티벌’ 연극 『고아 뮤즈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아름다움이랄까. 연극 『고아 뮤즈들』은 반듯하게 깎여진 세련미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안의 가능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별한 무대장치나 시각적인 자극 없이 배우들의 몸짓과 목소리에 온전히 의지해 흘러가는 두 시간 남짓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연극 『고아 뮤즈들』은 극작가 미셸 마르크 부샤르의 원작소설을 카티 라팽이 연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연되는 작품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번 공연은 하나의 ‘잉태’라고 표현할 수 있다. 국내에서 처음 공연되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극단 ‘프랑코포니’의 창단 공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공연을 계기로 원작소설이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돼 출판되게 됐다. ‘처음’이라는 수식어로 가득한 공연이지만 서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을 통해 정련되는 공연의 세련미는 부족할지 몰라도 번역, 연출, 배우들의 노련미는 살아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1965년 4월 부활절 전날. 4남매 중 막내 이자벨이 20년 전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에게 연락을 받았다며 언니, 오빠들을 불러 모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완고해 보이지만 바람둥이인 큰 언니 카트린느, 레즈비언이자 군인인 작은언니 마르틴느, 엄마가 떠난 후 엄마 옷을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남동생 뤽, 27살이지만 정신연령은 11살에 머물러 있는 막내 이자벨. 네 남매 중 누구 하나 평범한 이가 없다. 그렇게 모이게 된 남매들이 엄마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가며 극은 전개된다.

극은 가정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지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를 자유를 향해 떠난 용기 있는 여성으로 그리며 모성애에 대한 금기를 과감히 깬다. 더불어 어머니를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부재의 상태에 두고 미스터리한 존재로 남겨둔다. 이는 어머니와의 극적인 해후가 결말일 것이라고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작은 충격이다. 

오랜만에 모인 남매들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어머니를 향한 원망과 증오를 환기하며 갈등을 계속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쌓였던 오해가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풀리고 다함께 웃는 것으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이렇듯 연출가는 초반부의 비극성과 후반부 화해의 국면을 훌륭하게 버무려냈다.

또한 『고아 뮤즈들』은 시종일관 유머코드를 놓지 않는다. 우스꽝스런 모습의 뤽과 정신연령 11세인 이자벨의 대사는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이런 장치는 작품의 분위기를 경쾌하고 활기차게 유지시키지만 결코 가볍게 흐르지만은 않는다. 

극 중 이자벨은 작은언니 마르틴느에게 질문을 던진다. “언니는 누구나 아이를 가질 수 있고, 그 아이를 평생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 아이도 자기 엄마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가장 어리고 모자라 보이는 이자벨의 입에서 허를 찌르는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그것이 정제되지 않은 진실이기에 관객들에게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킨다.

연극 『고아 뮤즈들』은 국내 초연작이기 때문에 그 흔한 스포일러나 작품에 대한 평도 전혀 없다. 그렇기에 신선도에서는 최적의 상태다. 많은 초연작들이 초연으로만 끝나는 요즘, 처음의 마음을 유지해 ‘롱 런’에 성공하길 기대해본다. 8일(일)까지 대학로 우석 레퍼토리극장. 1만 5천원.

박소영 기자  thdud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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