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언덕으로 기댈 수 있었던 '연세는 예뻤다'

얼마전 4집앨범을 내고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진영 동문. 하지만 그런 그도 2학년 때까진 가수가 되려고 생각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단다. 그때까지 그의 꿈은 지 구과학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고.

2학년때 디스코텍에서 춤을 추다 김건모씨 매니저에게 픽업된 것이 그가 가수로 발을 내딛 게 된 계기. “그저 춤을 추는 것이 좋아서 디스코텍에 갔던 건데요. 김건모씨에게 춤을 가 르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구요. 그 때 하고 있던 과외 2개보다 수입도 많아 춤도 추고 돈도 벌면 좋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죠.” 그를 본 가요 관계자들 여럿이 손을 뻗쳤지만 그 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가수는 노래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해야된다고 생각해서 모두 거 절했습니다. 근데 제의를 받고 보니 가수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음악적 인 실력을 쌓고 가수가 되자는 생각으로 그는 가수 김현철과 작곡가 김형석을 찾아가 2년 동안 음악공부를 하고 자신이 직접 만든 곡으로 데뷔를 했다.

그가 처음 가수가 되었을 때 주위에선 부정입학, 특혜입학으로 우리대학교에 입학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단다. 그런 얘기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는 연대생이었기 때문에 좋았 던 점이 훨씬 많았다고. “누드집을 찍고 미친짓(?)을 해도 연대생이까 왠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인식이 좋았어요. 그리고 댄스가수로는 처음이었다는 것도 그렇구요. 그래서 요즘 은 후배가수들에게도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단 다. “학교는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언덕처럼 느꼈었습니다.”

학교시절 그는 화려한 연예인으로서의 지금보다는 많이 소박(?)했던 듯 하다. 예쁜 여자를 찾아 상경대 동아리 ‘아이섹(AISEC)’에 가입하고 공강시간에는 그저 여학생에게 말을 걸 어보려고 이화여대앞을 찾곤 했단다. “학교생활 기억은 너무 예뻐요.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노래부르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학교를 6년이나 다닌 그는 채플을 5학기 패스한 것이 가장 억울하단다. “하도 논패스가 많아서 저도 몇번 패스한지 몰랐었거든요. 나중에 1 번 더 한 것을 알고 얼마나 억울했던지…”

그는 지금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다. 가수만으로는 그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다 는게 그의 고백. “음악만 하다보면 아마추어리즘을 너무 많이 잃어버릴 것 같아요. 돈을 벌 기 위해 음악을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기 때문이라고. “행정학을 2년 공부하면서 오히려 정치학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정치 학을 공부해서 서민들이나 못배운 사람들에게 시사문제를 쉽게 가르쳐주고 싶어요. 정치학 이라고 꼭 딱딱해야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인지 지금 그의 가장 큰 소망은 낮엔 정치학 공부를 하고 밤엔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박동문은 요즘의 대학생들을 보면서 그의 학생시절보다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단다. “예 전보다 학생들이 훨씬 밝고 건강하고 귀여운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생활의 폭이 점점 넓어 지는 것 같아 보기가 좋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덜 심각하다는 생 각이 들어 우려가 되기도 한다고.

연세의 선배로서 그는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대학이 인생을 결정짓는게 사실이지만 그것 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해요. 적성에 안맞아 하기 싫은 일을 평생하는 것은 정말 괴롭잖아요. 대학시절에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고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해 요.” 또한 그는 ‘창의력’을 강조한다. 요즘 사회에서는 어느 분야에서나 기발한 창의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 “창의력은 도서관이나 학교안에만 있어서는 생길 수 없어요. 놀아도 보고, 술도 마셔보고, 외국에도 나가보고, 열린 사고를 할 수 있어야죠. 서울대생이랑은 뭔가가 달라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그의 경험을 얘기한다. “얼마전에 개헌에 대한 레포트를 쓴 적이 있었어요. ‘가요톱텐’의 폐지와 비교해서 논의 를 전개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어요. 그저 도서관에만 쳐박혀 있어서는 그런 사고를 할 수 없잖아요.”

그는 요즘 ‘십년이 지나도’로 후속곡을 바꾸고 통기타를 연습중이다. “통기타를 치면서 발라드를 부르고 싶어 처음 잡아보는 기타를 치느라 손이 다 벗겨졌어요.” 온통 물집으로 뒤덥혀 흉물스러운(?) 박동문의 손을 보면서 화려하게만 보이는 지금의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뎌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실력있는 가수와 열정적 인 정치학자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그의 모습을 앞으로도 기대해본 다.

이성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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