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풍속화

 

미술교과서 한 구석, 눈에 익은 그림 하나. 둥그렇게 둘러앉은 관중들의 시선이 서로를 쓰러뜨리려 안간힘 쓰는 두 남자에게 박혀있다. 승부가 나기 직전의 ‘결정적인 그 순간’, 엿판을 든 아이는 엉뚱하게도 씨름판을 등지고 섰다. 이 장면이 벌어지는 곳은 바로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 화폭 속이다.

단원 김홍도의 「씨름」

최근 신윤복의 천재성을 그린 TV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김홍도와 신윤복의 사랑을 상상한 영화 『미인도』가 잇달아 선보였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갑작스런 세간의 집중조명을 받았고, 그들의 작품이 공개된 간송미술관 가을정기전에는 수 만 관객이 몰려 대중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사람들의 이런 흥미는 화면 속의 허구적인 캐릭터에 의해 생겨난 것이지만, 그 캐릭터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상의 실제 인물들과 그들의 작품의 영향력도 간과할 수는 없다. 『바람의 화원』 원작소설의 대사를 빌어 표현하자면 “그림자는 허상이지만 그것도 실체를 반영한 것”인 셈이다. 200년 전 영·정조 시대를 풍미했던 옛 예술인들의 삶과 작품이 각종 현대 매체를 통해 지금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음지에서 꽃피운 풍속화

당시 좋은 그림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선비의 기개를 표현하는 ‘문인화’를 일컬었다. 사대부들이 수행의 일환으로 삼았던 사군자, 산수화 등의 문인화 말고는 가치 없는 ‘속된 그림’으로 치부됐다.

문인화의 틈바구니 속에 묻혀있던 이 ‘속된 그림’이 양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초 윤두서의 화폭 위에서였다. 그는 실학을 접해 근대적인 사상을 받아들인 양반 사대부로, 민중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을 그리기도 했다. 윤두서 이후 양반과 중인들 사이에서 주변의 생활상을 그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그리고 18세기 말에 이르러 이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김홍도가 풍속화의 일대 경지를 이룩한다. 그의 뒤를 이어 김득신과 신윤복 등 이른바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면서 조선 풍속화의 작품성은 절정에 이른다.

한편 당시의 풍속화는 주로 중인과 신흥 부농 등 새롭게 성장한 시민계급이 애호했다. 생산자였던 화인들뿐만 아니라 수요자였던 이들 시민계급도 풍속화의 발전을 이끄는 데 있어 한 몫 했던 것이다. 그림 취급도 못 받던 풍속화는 이런 추세 속에서 단 한세기만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하나의 문화코드로 급성장했다. 홍익대 동양화과 문봉선 교수는 “풍속화는 당대의 리얼리티”라며 “그만큼 진솔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즐겼던 것”이라고 말했다.

풍속화가는 ‘지금’을 그린다

그러나 풍속화는 19세기를 거치며 점차 퇴보한다. 화인들은 전 세기에 김홍도와 김득신이 닦아놓은 풍속화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했다. 걸출한 풍속화가도 더 이상 좀처럼 배출되지 않았다. 결국 외세의 압력과 식민지배와 같은 정치적 굴곡을 겪으며 풍속화의 맥은 거의 끊어지고 말았다. 우리에게 남은 풍속화의 기억은 김홍도 신윤복의 시대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

때문에 우리는 ‘풍속화’라면 으레 한복 입은 사람들이 주막에서 국밥을 퍼먹거나 그네를 뛰는 장면을 떠올린다. 조선 후기 풍속화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돼 풍속화를 ‘과거의 장르’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옛 풍속화는 훌륭한 유산이지만, 이에 얽매이기만 한다면 19세기 조선 풍속화계가 그랬던 것처럼 정체될 뿐이다. 문 교수는 “옛 사람이 한복을 입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재킷을 입는다”며 “현대의 풍속화라면 홍대 앞에서 춤추는 젊은이들을 그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의 풍속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오늘의 모습을 담아야 하는 것이다.

풍속화를 수묵담채라는 틀에만 가두는 것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사진, 영화, 컴퓨터 그래픽 등 오늘날의 시각매체는 무궁무진하다. 문 교수는 “종이에 그려진 것이냐 필름에 찍힌 것이냐의 차이일 뿐, 모두 인생을 포착한 하나의 풍속도”라고 말했다.

현대 한국의 모습을 만화적인 일러스트로 그리는 화가 최호철을 ‘21세기 풍속화가’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낯익은 풍경,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회화기법과 매체장르를 초월해 오늘날의 생활상에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드러낸다면 넓은 의미에서 풍속화의 하나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풍속화가'라고 불리는 최호철의 일러스트

200년 후 당신의 미니홈피 사진첩이 21세기의 풍속화첩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주위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우리의 마음과, 「씨름」 과 「단오풍정」을 그렸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서홍 기자 le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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