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까페문화 되짚기

커피 한 잔, 엽차 석 잔에
온 하루 세(貰) 얻어도 좋은 거리의 응접실(應接室)
어느 손님이나 거부(拒否)할 줄 모르는
인심(人心)이 한(限)없이 너그러운 지대(地帶)….”

- 1959년 3월 발표된 이희승의 시 「다방」中


우리는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바삐 걸음을 옮기다가도 문득 안온한 공간을 떠올린다. 몸과 함께 마음도 품어줄 수 있는 그런 곳. 1970, 80년대에 다방이 있었다면 지금 그곳엔 카페가 있다. 다방에서 카페까지 신촌의 카페문화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독다방 앞 일곱 시 어때”

지난 1971년 우리대학교 정문을 지나 굴다리 앞 건물 2층에 ‘독수리다방’이 문을 열었다. 독수리다방은 ‘독다방’으로 불리면서 대학로의 학림다방, 동대문의 은하수다방과 함께 만남의 장소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시의 다방은 소개팅, 미팅 규모에서부터 대규모의 동문회까지 소화했다. 김예란 동문(국문·87)은 “독수리다방은 학회, 동문회 같은 전체 모임의 장소로 많이 이용됐다”고 말했다.

독수리다방 1층에 있었던 게시판은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긴급한 용건을 전하는 매체 역할을 했다. 90년대에 들어 ‘삐삐’가 등장한 후 이곳은 호출장소로도 애용됐다. 심승배 동문(산업시스템공학·95)은 “각 테이블마다 설치된 전화기로 지인들을 호출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난 1998년 독수리다방이 위치한 건물이 복합상업건물로 변하면서 이곳은 점차 제 모습을 잃었다. 그리고 2004년, 한 때 대학생들의 낭만이 서려있던 그곳은 결국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인심을 대신한 편리함

독수리다방의 인스턴트 커피향이 가시기도 전에 신촌의 거리는 대형 커피체인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스타벅스, 할리스, 파스꾸치, 커피빈…. 이 체인점들은 세련된 이미지와 함께 다양한 맛의 커피로 신촌의 대학생들을 사로잡았다. 그때 그 시절, 학생들의 손에는 다방 주인이 직접 내주는 따뜻한 커피가 있었다면 지금은 진동하는 호출기가 들려있다. 대형 커피전문점은 카운터에서 주문한 뒤 자신의 차례에 호출기가 울리면 커피를 찾아오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널따란 공간의 수많은 테이블과 좌석,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PC는 손님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편리함은 줄지언정 사람들을 ‘품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신촌의 구석구석에서는 아담한 카페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신촌 한 켠에 자리한 행복한 공간들

그들은 대형 커피전문점과는 다른 고유한 분위기로 학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카페 ‘미네르바’는 지난 1975년 처음 문을 연 후 대형 커피전문점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사장 현인선씨는 이곳을 ‘바쁘고 복잡한 신촌에 자리한 행복한 분위기의 조용한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그곳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테이블과 소파, 그리고 클래식 음악과 함께 좋은 향의 커피가 있다. 현실의 차가움에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이곳을 즐겨 찾는다는 권현진(영문·04)씨는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길 바라기도 한다”고 말했다.

까페 '미네르바'

또한 최근 들어 생겨난 이색 카페 중 대표적인 곳으로 지난 2006년에 개업한 ‘오르베’가 있다. ‘오르베’는 이국적인 소품과 가구들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안락함을 선사한다. 또한 이곳에서 틀어주는 아프리카, 인도, 중국풍의 음악과 월드뮤직은 이 카페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한몫 한다. 여기에서는 홍차와 커피부터 시작해서 빵과 식사류까지 제공한다.  

까페 '오르베'

사장 박웅선씨는 이 카페의 매력으로 주인과 손님들과의 유대관계를 꼽는다. 박씨는 “작년부터 단골이었던 커플의 남자손님이 다른 여자분과 오셨는데 새 여자친구인 것을 모르고 그분께 옛 여자친구의 안부를 물은 적이 있었다”며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꺼내놓았다. 이런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사람의 발걸음을 이끄는 것이 아닐까.

카페, 사람을 품다

한때는 사회적인 담론의 장으로, 때로는 시대의 문화를 주도하던 X세대의 집합장소로,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대화의 공간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사색의 공간으로…. 그 이름과 모양새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같다. 앞으로도 자신을 품어줄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 한, 카페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까페 '트와자미'


박소영 기자 thdud0919@
사진 김가람 기자 super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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