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하철 1호선 종연

여기, 쇠기둥 대신 사람들의 기억을 선로 삼아 달리는 또 하나의 ‘지하철’이 있다. 오는 31일 4천회 공연을 맞는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지난 1994년 5월 첫 ‘운행’을 시작한 뒤 15년이 지나도록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다.

공연은 연변 처녀 ‘선녀’가 약혼자 ‘제비’를 찾아 서울 땅을 밟으면서 시작된다. 선녀가 몸을 맡긴 것은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낡은 1호선 차량. 선녀는 제비를 찾아 서울역에서 청량리로, 청량리에서 다시 서울역으로 몇 번이고 오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는다.

무대는 유기적으로 모습을 바꾸며 변화무쌍한 배경을 효과적으로 재현해낸다. 벽이 열리고 계단이 튀어나오면 무대는 서울역 지하도가 된다. 무대 한복판에 지하철 좌석 두 개가 놓이자 그곳은 곧 지하철 차량 안이다. 서울역 광장, 청량리 사창가, 그리고 1호선 지하철을 넘나들며 도시 하층민과 소수자의 삶이 다각적으로 그려진다.

개방적이면서도 피상적인 지하철이라는 극적 장치는 한국인의 정서와 교묘하게 융합했다. 지나가는 행인의 말 한마디조차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없다. 무대 위를 채우는 수많은 배우들의 몸짓과 대사는 극도로 세밀하게 압축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온갖 군상의 사람들이 지하철 좌석을 스쳐가며
빚어내는 상황들은 보는 이의 기억을 자극한다

『지하철 1호선』은 이미 폴커 루드비히가 쓴 독일 원작 『리니에 아인스(Linie 1)』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이례적인 공연기간과 공연횟수는 물론이고, 내용과 작품성의 측면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원작과 주제의식을 같이 하면서도 한국의 사회상황을 완벽하게 소화해 무대 위에 풀어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이후 『지하철 1호선』의 시대 배경은 90년대 말로 고정된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극 자체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10년 전의 타임캡슐인 셈이다. 극중 ‘선녀’를 열연하고 있는 이선녕씨는 10년 전 부산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상경했다고 한다. 이씨는 “그 때 받은 서울의 첫인상과 기억이 이 작품에 나타난 서울의 느낌과 비슷하다”며 10년 전을 떠올렸다.

'선녀'역을 맡고있는 이선녕씨 사진 박소영 기자 behappy@yonsei.ac.kr

예정된 공연을 끝으로 지금 버전의 『지하철 1호선』은 일단 막을 내린다. 역대 출연진으로 구성된 ‘4천회 팀’에서 ‘문디’ 역할을 맡고 있는 이봉근씨는 “그저께 60대 관객 분들이 오셨는데 젊은 관객들보다 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좋아 하시더라”며 “그만큼 한 시대의 정서를 잘 담고 있는 작품인데, 이제 정리된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쉬움의 목소리도 많지만 이게 진짜 끝은 아니다. 기존의 작품이 담아내지 못했던 지난 10년간의 변화상을 반영한 ‘21세기 버전’으로 재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남북 정상이 만났고, 우리는 월드컵도 치렀다. 사람들은 지하철에 앉아 화상통화를 즐기고, 선반 위는 무료신문으로 넘쳐난다. IMF는 떠났고, 또 다른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그간 못 다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새 차량으로 갈아타고 운행을 재개할 지하철 1호선은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을 어떤 식으로 그려내 줄 것인지 기대해 본다.  

4천회 공연을 앞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김서홍 기자 leh@yonsei.ac.kr
자료사진 극단 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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