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캠퍼스 태동기를 기억하는 동안 떠오른 안타까움이 송도캠퍼스의 앞날이다. 새로운 땅에서 130년 누리속의 연세, 겨레속의 연세의 정신과 활동을 구현하려면, 신설캠퍼스 구성원들만의 자부심과 희생정신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송도캠퍼스의 시작이 원주 일산캠퍼스의 천막교실과 매지캠퍼스의 진창길만큼은 아니겠지만, 독자적인 발전을 도모할 때까지는 연세 재단과 양 캠퍼스의 지속적이고 세세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 서른 원주캠퍼스의 지난 날을 추억하면서 가진 간절한 바람이다.
사실 원주캠퍼스 30년에 이르기까지 경험한 것은 연세재단과 서울캠퍼스의 부실한 지원과, 연세의 명성에 맞는 성장의 강요였다. 재단 전입금, 서울캠퍼스 대외협력처로 수렴되는 비지정기부금의 학생비율에 맞춘 원주캠퍼스 배정 등의 재정 지원과 서울캠퍼스가 가지고 있는 교육 시설과 경험, 연구 시설과 경험의 공유 논리와 방법의 개발, 적용 등이 배제된 채, 특성화만이 강요됨으로써 그동안 원주캠퍼스 구성원들이 겪었던 마음고생과 몸 고생을, 송도캠퍼스가 그대로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원주캠퍼스 도약의 시작은 새로운 정신의 발견부터였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이 세상 한계가 지워진 문명을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풀어가고 문제를 다듬어 가다보면 매지리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세계적인 매지리가 될 것이라는 것이 1992년 5월 원주캠퍼스 15주년 특강에서  무위당 장일순이 축복한 말씀이다.
원주캠퍼스가 서른이 된 2008년 5월 세상과 작별한 박경리는 불쌍한 것에 대한 연민, 허덕이고 못 먹는 것에 대한 설명 없는 아픔, 그것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숭고한 사랑이라고 하였다. 하나의 생명이 생명력을 갖기 위해 다른 하나의 생명이 자기 헌신, 자기희생을 한다는 사실의 인지에서 공생을 당부하는 두 어른의 가르침을 우리는 생명사상이라 칭한다.
1957년 3월 연희와 세브란부터를 통합한 연세대학교 초대총장 용재 백낙준은, 1920년대 식민지하 엄혹한 상황에 처한 겨레를 위해 본인이 직접  위당 정인보와 동암 백남운과 함께한 ‘실학의 창조’를 잊지 않았다. 1985년 1월 13일 선종한 그날까지 용재는 동과 서, 옛 것과 새 것의 진정한 화목을 연세 학문과 교육에 구현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였다.
서른 살 원주캠퍼스는 바로 이 두 정신, 겨레 수준에서는 ‘실학 정신’을, 개인 수준에서는 ‘생명사상’을 갖춘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누리속의 연세가 되는 재도약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인간과 인간이 공생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공생캠퍼스’, 실학정신과 생명사상이 함께하는 ‘실학생명나눔배움터’,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삼십년은 이를 익히는 시간이었으므로, 이제 백년 준비는 이를 만들어가면서 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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