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의 낡은 사진부터 합성된 디지털 사진까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작품을 보고있는 다른 사람들이지만, 사진에서 느끼는 감동은 하나가 된다. -대구사진비엔날레에서

 이 계절, 대구는 온통 사진으로 그득하다. 지난 10월 30일 대구사진비엔날레가 2주에 걸친 여정의 출발선을 박찼다. 10개국 200여명의 사진작가가 참여한 대규모 국제사진전이다. 도시의 한 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크고 작은 사진전이 기차놀이하듯 열을 짓고 늘어섰다. 올해 두 번째를 맞는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손길은 대구 구석구석을 감싸 돌고 있었다.

어제와 내일이 교차하는 사진의 향연

이번 사진비엔날레의 얼굴격인 주제전은 대구 EXCO에서 열리고 있다. 한·중·일의 삼색(三色)을 과거와 현재의 두 축에 투영시켜 보여주는 자리다. ‘내일의 기억’전에서는 동아시아 현대 사진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접할 수 있고, ‘동북아시아 100년 전’에서는 한 세기 전 세 나라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100년 전 삼국의 풍경은 서로 닮은 듯 달랐고, 100년 전 한국의 풍경은 지금과 다른 듯 닮았다. 전시장 한쪽의 유리관 속 구겨지고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가족사진의 미소 짓는 16개의 얼굴들은 훈훈함을 풍겼다. 울타리 없는 원각사탑에 두 아이가 올라타고 찍은 기념사진에서는 천진함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내일의 기억’전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펼쳐 보이려는 작가들의 욕심이 느껴진다. 그들의 사진은 현실을 재구성해 비일상화된 일상을 담고 있다. 사진작가 안세권은 ‘월곡동의 빛’ 연작을 통해 서울 뉴타운의 변모를 극적으로 그려낸다. 세 장의 사진 속 달동네의 새벽 풍경은 같은 자리에서 찍었지만 사진 속 가로등의 개수는 점점 줄어간다. 따뜻하고 노란 가로등 불빛은 점점 차갑고 파란 새벽 공기에 침식돼간다. 중국 작가 모 이는 빨랫줄에 누비이불을 걸어 말리는 모습만 36장짜리 필름 9줄에 가득 채워 나열했다. 하나일 땐 평범한 이불 사진이던 것이, 324장을 모아 필름으로 진열하니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예술을 피워낸다.

북한을 엿보다, 공간을 헤엄치다

도시 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EXCO에서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특별전이 한창인 대구문화예술회관이다.
촬영이 금지된 ‘변해버린 북한 풍경’ 전시장에서는 국내외 사진가들이 1950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마가렛 버그 화이트가 담은 1950년대의 북한 농촌 풍경은 우리네 어르신들의 그 시절을 떠올리는 친숙한 모습이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이내 우리에게 익숙한 북한이 사진 속에 나타난다. 그리스 작가 야니 콘토스가 포착한 세 여학생의 모습은 순간 보는 이의 숨을 죽인다. 그들은 한 손에 손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소총을 들고 담담히 광장을 걸어간다. 2006년 사진이다.
한편 ‘공간유영’전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환상적인 사진이 눈에 꽂힌다. 서류더미가 잔뜩 쌓인 책상과 책으로 빽빽한 책장이 바다 속에 놓인 풍경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장에 360°의 광경이 모두 담긴 이색적인 사진이 시선에 들어온다. 한 명의 모델을 복사해 붙여 넣어 사진을 가득 채운 난다 작가의 작품부터, 흰 종이로 만든 모형 산에 사람과 나무의 사진을 합성해 흡사 산수화를 연출한 임택 작가의 사진까지. 이처럼 ‘공간유영’의 작품들은 모두 디지털 작업을 거친 사진들이다.
‘공간유영’의 큐레이터를 맡은 우리대학교 신수진 연구교수(시각연구실·사진심리학)는 이처럼 실험적인 사진전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사진을 통해 디지털이 기술을 넘어 하나의 사고방식이자 생활방식임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봄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가치가 탄생한다”며 새로운 시도의 의의를 설명했다.

‘Made in 17’. 사진작가를 꿈꾸는 고등학생 50명이 프로젝트팀을 결성해 각자 출품한 사진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

틈새에서 빛났던 아마추어 작가들

“이번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시간도 부족했고, 다음에는 더 질 좋은 사진을 선보여야죠”
주제전이 마련된 EXCO 전시장 입구 바로 옆, 여느 사진전과는 느낌이 조금 다른 작은 부스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 붙은 전시회 제목은 ‘Made in 17’. 사진작가를 꿈꾸는 고등학생 50명이 프로젝트팀을 결성해 각자 출품한 사진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이다.
이번 행사가 첫 전시회인 이들에게 관객들은 호응을 보냈다. 실제로 이들의 사진에 붙은 이름표에는 군데군데 ‘팔렸음’을 의미하는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획한 김네오(18)씨는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좋게 봐 주었다”며 “사진을 찍으면서 처음으로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 팀은 앞으로 기수를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오는 12월에는 서울에서 두 번째 전시회까지 준비하고 있다.
계명대학교 대명동캠퍼스의 극재미술관에서는 또 다른 아마추어 사진전 ‘대구의 하루’가 열리고 있다. 사진전공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일반인들이 모여 하루 동안 대구의 일상을 찍어 전시하는 특별전이다. 아담한 전시장 벽을 빙 둘러 걸린 사진들에서는 신생아실부터 장례식장까지 도시의 삶을 조명하는 수십 개의 시선이 느껴졌다. 대구사진비엔날레 사무국 석재현 전시팀장은 “국제적인 규모의 사진전에 일반인이 직접 참여하고 전시와 출판까지 경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전문 사진작가들의 틈 속에서 유난히 빛나 보였던 아마추어 사진전이었다.

주말에는 사진여행을 떠나볼거나

대구사진비엔날레도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남은 절반의 일정을 지나면 16일(일)을 끝으로 올해의 사진전은 막을 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대구를 찾았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수많은 사진들을 만났다. 그 많은 사진들 가운데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최고의 사진을 발견한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작가라는 ‘사람’의 흔적을 읽어내며 감동한다. 결국 사진을 보는 것은 남들과의 토론이 아니라 작가와의 일대일 대화다.
가을, 사진작가와 대화를 나누기에 어울리는 계절이다. 오는 주말에는 어디로든 사진여행을 떠나보자. 찍으러 떠나는 사진여행이 아니라 보러, 그리고 이야기하러 떠나는 사진여행을.

글 김서홍 기자 leh@
사진 김가람 기자 super100@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