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카드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앨리스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앨리스는 한편으론 겁나고, 한편으론 화가 나서 작게 비명을 지르며 그들을 쳐서 떨어뜨리려고 팔을 휘저었다.’

  가장 잘 알려진 팝업북 작가 로버트 사부다(Robert Sabuda)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이 장면을 책을 펼치면 수많은 카드가 ‘아치(arch)’ 형태를 이루며 눈앞에 솟아오르도록 만들었다. 이는 이 장면을 읽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환상적인 광경을 팝업북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며 무언가 튀어 나온다’는 'Pop-up'과 ‘책(book)’이 만나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팝업북의 어제와 오늘

  팝업북은 책 속의 그림이 입체적으로 움직이고 튀어나오거나 독자가 그림을 움직일 수 있는 책을 뜻한다. 팝업북은 놀랄 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300년경에 최초로 종이가 움직이는 방식의 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6세기에는 37개의 움직이는 차트와 움직이는 여섯 겹의 판이 부착된 천문학 서적이 출판되기도 했다.

  팝업북이 정교하게 제작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였다. 특히 영국에서 팝업북 제작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페이지의 접힌 부분을 펼치면 새로운 그림이 나타나는 가장 단순한 방식에서부터 독자가 그림을 조합하는 방식, 그림을 밀어 올리고 내릴 수 있는 방식까지 다양한 형태가 등장했다. 1885년 레비 야기(Levi Yaggi)는 『야기의 해부학적 연구』라는 연구서를 출판했다. 이 연구서는 실제 사람과 똑같은 크기였고 사람 가슴 부분의 장기 그림을 여러 층으로 제작해 독자가 직접 열어볼 수 있었다.

  'Pop-up'이란 용어는 1930년대 미국의‘블루 리본 출판사(Blue Ribbon Books)’에서 처음 사용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입체 효과는 물론 그림이 회전하거나 작은 칩을 이용해 소리와 빛의 효과를 내는 등, 팝업북 안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팝업북의 주인공, 그 화려한 기법

  팝업북은 작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그 방법은 셀 수 없이 많고 앞으로 사용될 방법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팝업북에 이용되는 방법을 분류하면 ‘평면 기법’, ‘입체 기법’, ‘시각적 장치 기법’ 등이 있다.

  첫 번째로 팝업북에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평면기법’에는 ‘플랩(flap)’, ‘구멍 뚫기’, ‘변형’ 등이 포함된다. ‘플랩’은 그림을 세우거나 한 그림을 펼치면 뒤따라 다른 장면이 나타나는 방식을 일컫는다. 특히 이런 장면 전환은 이야기의 진행 상황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다. ‘변형’은 한 페이지를 분할해서 서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한 페이지를 세 부분 또는 그 이상으로 나뉘어 그 조각들이 각각 하나의 페이지처럼 되도록 만든다. 이 조각들을 넘기는 것을 통해 장면을 전환하거나 새로운 모양의 그림을 나타낼 수 있다.

  두 번째 ‘입체기법’은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극장무대’, ‘180°로 튀어나온 그림’ 등 세부기법도 다양하다. ‘극장무대’ 형식은 여러 층으로 구성된 그림이 입체적으로 세워져 있는 형식이다. 층층으로 된 건물이나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된 공간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180°로 튀어나온 그림’은 말 그대로 책을 180°로 펼쳤을 때 입체물이 책 속에서 튀어나오듯 세워지는 형태다.

  세 번째 ‘시각적 장치 기법’은 20세기에 들어서 고안됐다. 이전까지 팝업북을 종이로만 만들었던 것에서 벗어나 ‘물결무늬(Use of moire pattern)’나 ‘거울’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물결무늬’를 사용한 경우, 페이지 위에 어떤 패턴을 가는 줄로 인쇄 한 뒤 그 위로 비슷한 무늬의 패턴이 인쇄된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 판을 덮는다. 이 판은 빛에 반사될 때마다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부서지는 효과를 나타낸다. 이런 방식은 팝업북 작가들의 창의성을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예술의 날개를 단 팝업북

 작가는 여러 기법을 이용해 자신의 창의성을 형식이나 재료에 제한받지 않고 자유롭게 펼쳐보일 수 있다. 독자는 책의 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책을 ‘읽는’ 행동을 넘어, 팝업북이 전해주는 다양한 효과를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는 작업을 통해 독자가 책을 적극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팝업북과 창의성의 관계를 연구한 이기진씨는 그의 논문에서 “팝업북은 상상력을 가시화하고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한다. 팝업북을 보면 그 다양한 효과의 원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는 곧 똑같은 원리를 가지고 또 다른 작품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럽,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팝업북 작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팝업북에 대한 인기나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팝업북을 판매하는 인터넷 서점에서도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팝업북을 구매하거나 팝업북의 예술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팝업북을 기술적으로 발전된 아동용 그림책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가 인물과 사건의 적절한 구성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처럼, 팝업북 작가는 그림을 입체적으로 배치하고 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팝업북을 완성한다. 작가의 고민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태어난다는 점에서 팝업북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박영일 기자 pyi0402@
자료사진 로보트 사부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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