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학교를 길게 다니고 있는 지난세기 학번인 나로서는 요즘 부쩍 드는 의문이다. 학부제로 바뀐 뒤부터는 학부생은 졸업논문을 쓸 필요도 없어졌고, 취업난을 염두에 두신 것인지 교수님들의 배려 덕분에 좋은 학점을 받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혀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우들도 요즘은 드문 것 같다(물론 어디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점에 해당하는 수업을 듣고 그 수업을 준비하고 남는 시간에 우리들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행보는 마치 지하철 1호선에서 내려서 2호선으로 환승하러 가는 인파처럼 단순화, 획일화되어있다. 나는 현재 인문학부 소속이고 국문학과 독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가끔 주위를 둘러보면 학우들이 전공에 매진하고 있는 것인지 취업학(就業學)에 매달리고 있는 것인지 씁쓸한 의구심이 든다.
물론 학우들을 매도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크게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의 본질부터 원망해야 하며 작게 들여다보면 학부제 도입부터가 잘못 끼운 단추일텐데 말이다. 하지만 TOEIC, TOEFL점수가 낮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유창한 외국어 회화 수준에 미달되는 자신을 부끄러워 할 줄은 알면서, 동서양의 훌륭한 고전들에 해박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른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하면 ‘지성인’을 떠올리는 것이 과연 여전한지 의문스럽다.
당연히 먹고 사는 일처럼 중한 일도 없으니 잘 살기 위해 좋은 일자리를 얻고 그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팔리기 위한 스펙(specification)말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세계를 깊이 인식할 수 있는 영혼의 스펙도 더불어서 쌓기를 바란다는 욕심어린 당부로 이 글을 쓴다.

정혜정(국문/독문·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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