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긱,긱” 마이크가 한참 소리를 지른다. 무대 위에는 스텝 한 명이 연신 스피커에 마이크를 댔다가 떼었다가 한다. 소음이 공연장을 울리고 귀를 아프게해도 그 장난같은 행동은 계속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음의 소리는 잦아들고 마침내 마이크가 스피커 가까이에 가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제야 음향실에서는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배우는 셋팅이 완료된 마이크를 잡고 한껏 목청을 돋운다. 흥겨운 뮤지컬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의 풍경이다.

이 풍경의 중심에 음향실과 음향팀이 있다. 음향실은 소리라는 공연의 핵심 요소를 다루는 장소다. 상황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과 효과음 등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모든 소리들은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조작된다.

음향팀은 크게 음향감독, 음악디자이너 그리고 음향 스텝으로 나뉜다. 음향감독은 음향팀을 총괄하는 우두머리다. 음향감독은 작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각 목적에 걸맞은 음악을 선정하거나 직접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만들어진 음향들은 하나로 편집돼 공연시 목록표와 함께 사용된다. 연극 『라이어』에서 음향·조명 오퍼레이터를 맡고있는 이은미(35)씨는 “과거에는 주로 편집을 해 테이프를 만들었지만 요즘엔 CD에 녹음한다”며 “공연에 필요한 부분만을 추려내 공연에 적합하게 사용한다”고 말했다.

음악디자이너는 ‘이큐(EQ)’나 ‘이펙터’같은 음향기기를 통해 준비된 소리를 최적화해 내보내는 일을 한다. 또한 배우들의 육성부터 밴드에 속한 각 악기의 레벨이나 발란스도 적절히 조절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뮤지컬 『록키호러쇼』의 음향감독 겸 디자이너인 이한솔(30)씨는 “음악 비중이 큰 뮤지컬 경우 음향이 관객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다”며 “밴드 소리와 배우들의 육성을 적절히 조합해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음향 스텝들은 음향 전반에 관한 업무를 분할하여 담당한다.

이렇듯 음향에 관련된 업무들은 섬세하고 기술적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음향에 관한 기술자를 양성하는 곳이 없다. 현재 극예술계 전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음향장비를 렌탈해주는 곳에서 기기를 설치하고 다루는 작업을 하며 일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한솔 씨는 “외국은 따로 기기 오퍼레이터나 디자이너등을 나누어 양성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자리가 덜 잡혔다”고 말했다.

공연에 귀속돼 활동해야하는 음향 관련직은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급여가 적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함께 병행하는 경우도 잦다. 또한 기기의 조작뿐 아니라 설치와 회수까지 전부 담당해야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크다. 이은미씨는 “연극을 공짜로 볼 수 있다거나 연예인을 만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지원했다가 일이 힘들어 한두달만에 그만두는 사람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늘 무대 뒤에 묵묵히 서 있을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관객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서운하지 않냐는 질문에 음향·조명 오퍼레이터인 정슬기(24)씨는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충실히해서 보람을 얻을 뿐이다”라며 손사레를 친다. 그녀는 “관객들이 즐거워하면 그게 여기서 얻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이펙터를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그리스의 에피다우루스 원형 극장에서는 1만 4천명이나 되는 관객이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모든 소리를 똑같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석회암 좌석’이 소리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막이 오르는 어느 극장에서나 이 고마운 석회암 좌석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언제든 무대 뒤, 혹은 곁에서 우리가 모르는 새에 조용히 극을 완성시키고 있다.

 글 김규진 기자 loveme@
 사진 박소영 기자 be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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