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영등포 쪽방촌’. 살인적인 물가상승 때문에 외부의 도움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
허경업(67)씨는 20년간 영등포의 허름한 쪽방에서 살고 있다. 군산에서 옷장사를 하던 그는 20년 전 서울로 올라와 여인숙을 운영하다가 쪽방촌으로 왔다. 나이와 병 때문에 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두 번에 걸친 자궁암 수술과 아픈 다리를 이끌고 혼자 0.6평의 좁은 쪽방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자식들이 있지만, 어려운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다. 딸 역시 이 동네에 살고, 아들은 정신이 이상해져 몇년 전 집을 나갔다. 허씨는 “아,  저그들도 살기 힘든데 나한테 무슨 도움을 줘. 도움은 무슨…”이라며 자식들을 감싼다.
몇년새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허씨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문제다. 밥은 쪽방촌 사람들을 돕고 있는 ‘광야교회’에서 얻어먹고 있지만 반찬은 주로 사서 먹는다. 주로 먹는 반찬인 김치와 채소는 지난 1월과 비교해 크게 올랐다. 전에는 가끔 먹던 생선도 이제는 부담이 된다. 허씨는 “겨울에만 해도 한 손에 1천원 하던 생선이 요즘 먹으려고 하면 3천원이니 우리 같은 사람이 먹기가 힘들지”라고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난 9월부터는 몇몇 먹거리들의 가격은 오르지 않고 있다. 과일 같은 경우는 오히려 추석 이후 가격이 약간 떨어졌다. 하지만 허씨에게 과일값의 하락은 의미가 없다. 그는 “과일값이 떨어졌다고? 안 사 먹어봐서 잘 몰라”라고 말했다.

 생계를 위협받는 빈곤층

최저생계비 38만원에서 밥값, 전기세를 뺀 17만원으로 한달을 버티는 최진규(50)씨에겐 치솟는 물가가 가혹하기만하다.
영등포역 옆으로 경찰서를 지나면 나무판자로 지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영등포 쪽방촌’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허씨와 같이 정해진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 산다. 거리 노숙인과 유동적인 노숙인, 쪽방 주민을 포함해 약 1천여명이 영등포역 주변에서 살고 있다. 정부보조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그들은 약간의 물가 상승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큰 문제다. 6년 전 대구에서 영등포로 왔다는 김범수(40)씨는 교통사고로 팔 한쪽과 다리 한쪽을 잃었다. 밥을 해먹기도 어려운 김씨에게 물가 상승은 가혹할 뿐이다. 인근 교회에서의 지원이 끊긴다면 김씨와 같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물가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는 국제곡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서민들의 기초생활과 직결된 식자재들의 가격이 인상되고 있다. 또한 유가 상승으로 인해 기름값도 오르는 등 식자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물가도 상승하고 있다. ‘LG 경제 연구원’의 이광우 선임연구원은 “물가가 상승하면 서민층도 문제지만 소득이 없는 빈곤층이 가장 큰 취약점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빈곤층의 경우 물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소득이 있는 계층보다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으로 봉사 단체들도 된서리

물가상승으로 인한 어려움은 빈곤층을 위한 봉사단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서울시 중구 중림동에 위치한 ‘소중한 사람들’에서는 지난 2005년 1월부터 주 2회에 걸쳐, 서울역 남대문 5가 지하도에서 노숙인들과 예배를 드리고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현재는 1천여명의 노숙인들이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에 걸친 물가 상승으로 이곳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중한 사람들’의 유정옥 회장은 “물가가 높아지다보니 재료비용이 많이 든다”며 “이뿐만 아니라 후원하시는 손길들도 줄어들어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이 다가오면서 노숙인들이 무료급식소에 더 많이 몰리고 있어 어려움은 점점 심해질 전망이다. 
인천시에서 무료급식과 노숙인 쉼터를 제공하는 ‘내일을 여는 집’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내일을 여는 집’의 이준모 목사는 살인적인 물가상승에 따른 빈곤층들의 어려움을 ‘분노수준’이라고 표현한다. ‘내일을 여는 집’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의 경우 식자재로 나가는 비용이 연초와 비교해서 10월 현재 30%정도 상승했다. 그러나 식자재 값 상승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가 상승으로 인해 보일러를 돌리는 것도 부담이다. 또한 사람들의 기부도 줄어들고 있다. 이 목사는 “물가 상승 때문에 빈곤층뿐만 아니라 도와주던 사람들도 심리적으로 부담을 가지고 있다”며 “작년만 하더라도 쌀이라도 기부가 들어와 반찬값을 아낄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기부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매년 추석마다 기부됐던 사과, 배 같은 과일들이 이번 추석에는 한 박스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소망을 꿈꿀 수 없는 그들

다행히도 지난 8월부터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소 둔화되는 등 전반적인 물가 여건이 일시적으로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LG 경제 연구원’의 이 선임연구원은 “현재 상황을 봤을 때 앞으로 물가가 하향 안정화 될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물가만 고려했을 때 빈곤층의 상황이 약간은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지출의 경우 지금의 수준에서 더 나빠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 선임연구원은 “빈곤층의 소득은 높아지지 않기 때문에 물가가 안정된다하더라도 빈곤층의 상황은 크게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빈곤층의 물가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며 “실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내일을 여는 집’의 이 목사 역시 “정부가 빈곤층을 도와주고 있는 무료급식소에 더 많은 지원을 해주고 인건비가 절감될 수 있도록 공공근로자와 같은 자원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앞장서서 기부문화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더 이상 방관할 일이 아니다. 물가 상승의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빈곤층은 조그마한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 지난 1월 달부터 쪽방촌에서 살기 시작한 시각장애인 최진규(50)씨는 터무니없는 물가 상승에 먹고 사는 것조차 힘이 든다. 밥과 김치로만 며칠을 버티다 가끔 시장에서 주워온 배추로 시래기 국을 끓여 먹는다. 그는 소망을 꿈꾸기에도 힘이 든다. “소망이요? 딱히 바라는 것은 없어요. 정부에서 주는 돈 가지고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데 그런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글 최명헌 기자 futurewalker@
사진 김지영 기자  euph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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