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교 체육시설 실태를 점검한다

1층과 2층이 분리되지 않아 체육관 내부의 소음이 심각하다.

목요일 1교시. 10명 남짓한 학생들이 농구코트 중앙에서 경기를 벌이고 있다. 구석에서 농구 연습을 하고 있는 대여섯 명의 학생들도 눈에 띈다. 농구공 튀기는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뒤엉켜 귀가 멍멍하다. 여기에 2층 태권도장에서 20명 남짓한 학생들이 내는 기합소리까지 섞인다. 1층과 2층이 개방형 복층 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중석 벽을 따라 설치된 조깅트랙을 달리는 사람의 발소리까지 합쳐져 교수의 목소리는 소음에 묻혀버렸다. 호신술 강의를 맡고 있는 체육교육과 김진덕 강사는 “동시에 여러 수업이 진행되다보니 소음 문제가 심각하다”라며 “수업이 끝나면 목이 쉴 정도”라고 말했다.

교양 체육수업을 듣는 학생이 3천명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수업이 이뤄지는 실내강의실은 체육관, 체육교육관, 노천극장 뿐이다.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수업은 농구, 태권도, 호신술 등을 비롯하여 17개 과목이다. 체육관만 해도 매일 평균 5시간 이상 강의가 열리지만 공간은 한정돼 있어 수업이 겹칠 수밖에 없다. 이에 김 강사는 “특히 정신교육이 이뤄져야 할 도장이 소음으로부터 보호되지 않아 학생들이 전혀 집중할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체육수업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체육관 2층 태권도장에서 수업을 마친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화장실로 향했다. 운동복을 갈아입기 위해서다.  체육관에 탈의실이 존재하지 않아, 대부분의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불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 “수업이 끝나면 한꺼번에 학생들이 옷을 갈아입어 비좁다”는 장지혜(중문·07)씨의 말처럼 화장실은 옷을 갈아입는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비좁은 화장실을 피해 2층에 위치한 체육위원회 사무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따라가 보니 사무실에 딸린 간이부엌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눈길을 던진다. 달랑 칸막이 하나 쳐진 곳에서 옷을 갈아입는 여학생들의 표정에서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탈의실 대용으로 사용되는 샤워실 한켠에는 라커도 없어 개인 소지품이 선반 위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던 조희연(행정·03)씨는 “도난 사고가 발생하진 않을까 걱정 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낙후된 체육관에 학생들 불만

옷을 갈아입은 학생들은 샤워도 하지 못한 채 다음 수업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샤워실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김세현(대기·06)씨의 말처럼 화장실 맞은편에 위치한 샤워실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들어가 봤더니 배관 위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고 주인 없는 가방과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불을 켜도 어두컴컴하다. 김씨는 “1, 2교시 체육수업을 하고나서 땀을 씻지도 못한 채 그날 하루를 종일 찜찜하게 보낸다”며 “불편한 시설 때문에 체육수업 수강이 꺼려 진다”고 말했다.

라커룸 없는 샤워실에 학생들의 소지품이 방치돼 있다.

비 오는 날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비가 새는 관계로 체육관엔 양동이와 신문지가 군데군데 놓인다. 가까이 가보니 양동이와 신문지 위엔 천장에서 새는 빗방울이 고이고 있었다. 이시영(생명·06)씨는 “비가 오는 날이면 비가 떨어지는 부분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운동을 하는데 위험해 보인다”며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가 미끄러져 다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 학생에겐 제한적인 체육시설

한편 수업이 시작할 무렵 테니스 코트로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테니스 수업을 듣기 위해 무악학사 근처에 위치한 코트까지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표정엔 수업도 시작하기 전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동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수업은 10분 늦게 시작됐다. 윤영빈(자연과학부·08)씨는 “올라오기도 힘들뿐 아니라 수업이 늦게 시작되고 일찍 끝나기 때문에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체력육성실을 찾은 한 학생이 문 앞에 붙은 ‘체육학과 학생 전용’이란 안내문을 보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러닝머신, 덤벨 등 운동기구가 잘 갖춰져 있지만 일반 학생들에게 체력육성실 문턱은 높기만 하다.

낮 3시가 되자 체육관에서 농구를 즐기던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문을 나선다. 3시부터 6시까지는 농구부가 체육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널럴한 체육관 내부와는 대조적으로 실외 농구코트의 7개 농구대마다 학생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농구대 사이로 다른 농구대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팀의 공이 굴러 들어와 경기를 방해한다. 운동하다 지친 학생들은 땀을 식히며 농구코트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있다. 박승민(토목·03)씨는 “농구하다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다 소지품 둘 곳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운동부도 예외일 수 없는 현실

럭비는 운동의 특성 상 과격한 몸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따라서 선수들이 노지인 대운동장서 연습 중 뒤엉켜 쓰러질 때마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잔디구장이 갖춰져 있지 못하다 보니 작은 몸싸움에도 부상이 속출하기 일쑤였다. 축구부도 상황은 비슷한 실정이다.

사람 없는 대운동장은 언제 봐도 휑하다. 말 그대로 ‘운동장’만 있다. 화장실이 한 군데 있지만 운동장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 한 번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넓은 대운동장을 횡단해 첨단과학기술연구관까지 가야한다. 천연 잔디 구장에 선수대기실, 응원석 스탠드 등 체육 편의 시설이 완벽히 갖춰져 있는 경희대, 고려대 운동장과 비교된다. 우리대학교 축구부 남준재 선수(스포츠레저·07)는 “축구부 선수들이 대체로 대운동장에 불만이 많다”며 “라커룸과 같은 선수 편의 시설 설치는 예정에 없고 달랑 인조잔디 구장과 트랙만 설치한다고 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야구장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그물은 군데군데 녹이 슬고 찢겨져 있었다. 그라운드 한 가운데에는 쓰레기통이 자리 잡고 있고. 심지어 3루 베이스 부근엔 연고를 알 수 없는 축구 골대가 놓여있다. 선수들이 한창 타격과 피칭을 연습하고 있는 곳 주변엔 나무를 지탱하기 위해 세운 돌들이 곳곳에 돌출돼 있었다. 선수들의 안전과 직결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녹지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듯 보였다.

지난 9월 19일부터 시작된 대운동장의 잔디구장 구축공사

완공 당시 아시아 최고의 규모를 자랑했던 체육관이지만 지난 48년간 개·보수 한 번 이뤄지지 않았다. 새 체육관을 짓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15년째 미뤄지고 있다. 체육위원회 김갑종 부장은 “학교 측이 체육시설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19일부터 시작된 대운동장의 잔디구장 구축도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기존의 관리가 수월했던 노지와 달리, 철저한 관리가 요구되는 잔디구장 보존을 위해 학생들의 대운동장 사용이 전보다 제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이 또 다른 문제를 낳는 이 같은 상황에서 당장 해결책을 강구하긴 어렵다. 지속적인 학교 측의 관심과 학생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제연, 장유희 기자 blooming@

사진 박소영기자 be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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